
작성일 : 2017-10-30 11:49 수정일 : 2017-10-30 11:51
광해2년(1612) 대과에 등제하여 정언(正言)이 제수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영창대군의 증살을 규탄하던 절기지사 동계 정온(桐溪 鄭縕)이 제주도로 유배당하자 영남유림을 대표하여 신구동계소(伸救桐溪疎)란 상소문을 제찬하였다가 적신을 두둔하였다는 죄명으로 황해도 토산(兎山)으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원사하였다. 인조반정후 좌승지가 증직되고 산청 서계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또한 대구의 임란호국영남충의단에 봉안되어 있다. 사호선생문집(思湖先生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