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4:03
1587 (선조 20) ~ 1646 (인조 24) 자(字)는 윤보(潤甫) 호(號)는 규봉(圭峰), 진사(進士) 대형(大亨)의 아들.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仁祖)를 공주(公州)에 호종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또 왕을 모시고 강화에 들어가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다. 이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이 되었다. 1633년 광산현감(光山縣監)으로 부임, 선정(善政)을 베풀어 현(縣)으로 강등되었던 것을 다시 주로 승격시키고 목사(牧使)가 되었다. 1635년(인조 13)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에 승진되어 이듬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군대를 이끌고 쌍령(雙嶺) 싸움에 나갔다가 패배, 이어 문경(聞慶)에 이르러 군사를 모아 재기를 도모하던 중 강화가 성립되었다. 뒤에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임피(臨陂)에 유배되었다가 1638년 재등용되어 제주목사(濟州牧使)로 부임, 선정을 베풀어 비변사 당상이 되었다. 이어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승지(承旨) 도순찰사(都巡察使) 평안도와 경기도 관찰사(觀察使)를 역임, 1644년(인조 22)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로 부임하여 임지에서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