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3:56
1570 (선조 3) ~ 1646 (인조 24) 자(字)는 사윤(士允) 호(號)는 두암(杜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이 되어 수원에서 권 율(權 慄)을 도와 군량(軍糧) 공급에 힘썼고,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는 의병을 이끌고 역전(力戰)했으며 이듬해 순천예교(順天曳橋) 싸움에서 군량보급을 맡았다. 그 공으로 주부(主簿)가 되고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이 난을 일으키자 또다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세자(世子)를 모시고 피난,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량을 모아 강화(江華)에 수송했다. 옥과(玉果)의 구암사(龜巖祠)와 나주(羅州)의 충장사(忠莊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