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3:52
1569 (선조 2) ~ 1644 (인조 22) 자(字)는 자순(子順) 호(號)는 남애(南崖) 시호(諡號)는 효간(孝簡), 목사(牧使) 우정(友正)의 아들. 1596년(선조 2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승문원(承文院) 예문관(藝文館) 벼슬에 보직, 한때 사직하였다가 1601년에 검열(檢閱)이 되고, 수원부판관(水原府判官)에 올라 정홍익(鄭弘翼)과 함께 무고를 받은 성 혼(成 渾)을 변호하다 옹진현령(饔津縣令)으로 좌천, 광해군 초에 장령(掌令)으로 직언하다가 다시 면직되었다. 그 후 은계찰방(銀溪察訪) 보덕(補德)을 지내고 폐모론이 일어나자 사직,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재등용 되어 병조참지(兵曹參知) 여주목사(驪州牧使) 판결사(判決事)를 거쳐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도승지(都承旨) 예조와 형조의 참판(參判)을 역임하고, 1629년(인조 7)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올랐다. 162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왕을 호종(扈從), 화친의 조건이 되는 볼모로서 왕족인 능봉군(綾峯君)을 왕의 동생으로, 자신은 대신으로 가장하고 회담에 참가했으나 발각되어 실패, 이듬해 이로 인해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638년(인조 16) 신원(伸寃)되었으며 163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