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2:02
1491 (성종 22) ~ 1558 (명종 13) 자(字)는 맹용(孟容) 호(號)는 보암(保庵) 시호(諡號)는 충혜(忠惠), 영의정(領議政) 회(澮)의 증손 사인(舍人) 순문(順門)의 아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1516년(중종 11) 생원(生員)이 되고, 1522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승문원 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를 거쳐 검열(檢閱) 대교(待敎) 봉교(奉敎)를 역임하였다. 152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531년 검상(檢詳)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을 거쳐 진휼경차관(賑恤敬差官)에 뽑혀 기민(飢民)을 구제했고, 1533년 의주부사(義州府使)에 올랐다. 1537년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2년 후 예조참판(禮曹參判)으로 진향사(進香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병조참의(兵曹參議) 대사간(大司諫)을 역임, 1541년 대사성(大司成) 이듬해 특진관(特進官) 형조참판(刑曹參判), 1543년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다음해 호조참판(戶曹參判)이 되었다. 1545년(인종 1) 호조판서(戶曹判書)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직, 이해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으로 청성군(靑城君)에 봉해진 후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가 되어 「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1547년(명종 2) 좌참찬(左參贊) 예조판서(禮曹判書) 우찬성(右贊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좌찬성(左贊成)을 역임, 1548년 우의정이 되고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진봉되었으며 다음해 좌의정에 승진되고 1551년 영의정에 올랐다. 명종(明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