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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순창설씨] 설순조(薛順祖)

작성일 : 2017-10-24 14:29

(14271496) : ()는 창윤(昌胤)이고 호()는 삼지당(三知堂)이다. 단종(端宗) 2년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부사직(副司直)이 되었다. 세조(世祖) 원년(元年) 서기 14551227일 좌익원종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나 뿌리치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호(自號)를 삼지거사(三知居士)라 하고 당()을 지어 삼지당(三知堂)이란 현판(懸板)을 걸었다. 삼지란 그 뜻을 알고 나아갈 줄 알고(知進), 만족할 줄 알며((知足), 그칠 줄을 안다(知止)는 뜻이다. 낙향한 다음해 단종(端宗)이 영월(寧越)에서 죽음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5일간 식음(食飮)을 전폐(全閉)하고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와 더불어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27년만인 성종(成宗) 14년 서기 1483년 성종의 간곡(懇曲)한 부름에 절충장군(折衷將軍) 부산포(釜山浦)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임명(任命)되어 부임(赴任)하자 부산진(釜山鎭)을 총점검(總點檢)하고 주진(主鎭)을 부산포(釜山浦)에 설치(設置)할 것을 상소(上疏)하였으며 성종(成宗) 17년 서기 1486년 통정대부 상주(尙州)목사(牧使)와 광주(光州)목사(牧使)에 부임하고 객사(客舍)를 중수(重修)하였고 성주(星州)목사(牧使) 김해(金海)부사(府使) 황주(黃州)목사(牧使)를 역임하고 69세의 나이가 고령(高嶺)임을 자처(自處)하고 사직서(辭職書)를 내었으나 성종(成宗)이 하서(下書)하기를 무릇 장이된 자는 재주만 귀중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정직한데 달려있을 뿐이다. 하고 그대는 사양치 말고 더욱 진장(鎭將)에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삼지당(三知堂) 당기(堂記)에는 좌찬성(左贊成) 손순효(孫舜孝), 부윤(府尹) 신말주(申末舟), 참판(參判) 권경우(權景佑) 정낭(正郎) 안심(安深), 판관(判官) 최영(崔榮), 전적(典籍) 안기(安璣), 등의 시문 60수가 전하며 금부도사(禁府都事) 송병순(宋秉珣)이 묘비문(墓碑文)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