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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서유구(徐有榘)

작성일 : 2017-10-23 13:59 수정일 : 2017-10-23 14:02

1764(영조 40) 1845(헌종 11). ()는 준평(準平), ()는 풍석(楓石), 시호(諡號)는 문간(文簡), 대제학 명응(命膺)의 손자, 정헌(靖憲) 호수(浩修)의 아들. 철수(澈修)에게 입후, 1790(정조 14)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92년 대교(待敎), 검열(檢閱)을 역임, 1797년 「향례합편(鄕禮合編)」을 편집했다.

순조(純祖) 때 의주 부윤(義州府尹)․대사성(大司成)․부제학(副提學)․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형조 판서(刑曹判書)․예조판서(禮曹判書)․대사헌(大司憲)을거쳐 1838(헌종 4) 다시 대사헌(大司憲), 이어 상호군(上護軍)․이조․형조의 판서(判書)․우참찬(右參贊)․좌참찬(左參贊)을 역임했다.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實學)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백가서(百家書)에 통달하여 문명이 높았다. 1834년 호남 순찰사(湖南巡察使)로 노령(蘆嶺) 남북을 돌아보던 중 기근(飢饉)을 겪고 있는 백성들의 궁핍을 목격하고 나서, 일본에 가는 통신사(通信使) 편에 부탁하여 고구마 종자를 구입, 각 고을에 나눠 주어 재배를 장려하고, 「종저보(種藷譜)」를 저술하여 그 재배법을 널리 알렸다.

「농대(農對)」 혹은 「경계책(經界策)」 등 농정에 대한 경론 및 상소문을 써서 영농법(營農法)의 개혁을 누차 역설했고, 만년에는 전원(田園)에 묻혀 몸소 농사를 지으며 박세당(朴世堂)의「산림경제(山林經濟)」를 토대로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라는 저술을 남겼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또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라고도 하는 이 책은 농업을 주로 한 방대한 백과사서(百科事書), 본리지(本利志)를 비롯하여 팔역 이정표(八域里程表)에 이르기까지 16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가운데는 농기(農器)의 도보(圖譜), 심지어는 전국의 시장 날짜까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