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년(영조 25) ~ 1824년(순조 24). 자(字)는 여림(汝琳), 호(號)는 명고(明皐), 문정(文靖) 명응(命膺)의 아들.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된 명성(命誠)에게 입후(入後). 1773년(영조 49) 생원(生員)에 합격, 1783년(정조 7)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부수찬(副修撰)․승지(承旨)․광주 목사(光州牧使) 등을 지내고 영변 부사(寧邊府使)로 있다가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북경에 다녀왔다. 1804년(순조 4) 이조 참판(吏曹參判)이 되고 그 이듬해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를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이 되었다. 저서로 「명고집(明皐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