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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 성희안(成希顔)

작성일 : 2017-08-29 12:13

1461 (세조.7) 1513 (중종 8) ()는 우옹(愚翁), ()는 인재(仁齋), 시호(諡號)는 충정(忠定), 돈령부 판관(敦寧府判官) ()의 아들. 1480(성종 11) 생원(生員)이 되고 1485(성종 16)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정자(正字)․부수찬(副修撰) 등을 거쳐 이조 참판(吏曹參判) 겸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1504(연산군 10) 이조 참판에 이르렀으나 양화도(楊花渡) 놀이에서 왕의 횡포를 풍자하는 시를 써 바침으로써 미움을 받아 무신직(武臣職)으로 좌천되었다. 그후 정치가 점점 문란해지므로 박원종(朴元宗)․류순정(柳順汀)과 협의,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하고 중종을 추대하는데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형조 판서(刑曹判書)가 되었다.

이어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로 봉해지고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반정의 경위를 납득시켜 중종의 즉위를 인준받고, 귀국 후 우의정(右議政)을 거쳐 1513(중종 8)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중종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