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9 11:56
1386 (우왕 12) ~ 1448 (세종 30) 시호(諡號)는 희정(僖靖), 판서 석연(石珚)의 아들. 음보(蔭補)로 공정고 주부(供正庫主簿)가 되고 감찰(監察)․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공조 좌랑(工曹佐郞)․공조 정랑(工曹正郞) 등을 역임했다.
1414년(태종 14) 군자부정(軍資副正)에 이어 동부대언(同副代言)․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공조 참판(工曹參判)․우군 도총제(右軍都摠制)․공조 판서(工曹判書)․우찬성(右贊成) 등을 지냈다.
그후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겸하고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다. 딸이 태종의 네째 아들 성녕대군(誠寧大君)에게 출가했으나 성녕대군이 일찍 죽자 몹시 애통해한 태종이 세종에게 지시함으로써 성씨(成氏) 일족이 공신(功臣)으로 대우받게 되 었다. 좌의정(左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