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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백씨] 백유함(白惟咸)

작성일 : 2017-08-28 14:38

1546 (명종 1) 1618 (광해군 10)  ()는 중열(仲悅), 대사헌(大司憲) 인걸(仁傑)의 아들. 1570(선조 3) 진사(進士)가 되고, 157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고 이조 정랑(吏曹正郞)에 승진, 이때 이 이(李 珥)가 죽고 조정에 당쟁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용안(龍安)에 내려가 제자들을 가르쳤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에 서울로 돌아와 헌납(獻納)이 되고, 이어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거쳐 검상(檢詳)․사인(舍人)을 지냈다. 1591년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정 철(鄭 澈) 등 서인(西人)이 물러날 때 경흥(慶興)으로 유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풀려나와 왕을 의주(義州)로 호종(扈從), 직제학(直提學)에 임명되었다가 명나라 군사의 군량(軍糧) 조달의 임무를 맡았다.

1594년 동부승지(同副承旨)․좌부승지(左副承旨)를 역임,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 호군(護軍)으로 명사(明使) 정응태(丁應泰)를 접반(接伴), 일본과의 강화(講和)를 의논하다가 이이첨(李爾瞻)의 탄핵을 받고 부안(扶安)에 유배(流配), 이어 고향 용인(龍仁)에 방환(放還)되었다가 1617(광해군 9) 신원(伸寃)되어 개성(開城)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