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23 11:50
1550 (명종 5) ~ 1615 (광해군 7) 자(字)는 행보(行甫), 호(號)는 미락재(彌樂齋), 낙재(樂齋). 전교(典校) 흡(洽)의 아들, 백부 형(泂)에게 입양(入養). 이천(利川) 출신. 정구(鄭 逑)의 문인. 주자학(朱子學) 및 이 황(李 滉)의 문집(文集)을 깊이 연구하고 중년 이후에는 후진을 가르쳤다.
선조(宣祖) 때 학행(學行)으로 감역(監役), 찰방(察訪)을 지내고, 1595년(선조 28) 청안 현감(淸安縣監)에 부임하여 학문의 진흥과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1598년에 사임했다.
후에 개령(開寧)․옥과(玉果)․연기(燕岐)의 현감, 형조 정랑(刑曹正郞)․호조 정랑(戶曹正郞)․역학 교정(易學校正) 등에 임명 되었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 대구의 이강서원(伊江書院), 청안(淸安)의 귀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