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7 14:31
1457(세조 3)~1521(중종 16) 자(字)는 흠지(欽之), 호(號)는 창계(滄溪). 1495년 (연산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성균관 벼슬을 거쳐 비안 현감(比安縣監)․강원도 도사(江原道都事)를 역임하고 종부시 첨정(宗簿寺僉正)․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 등을 지냈다.
1508년(중종 5) 삼포왜란 때 왜적을 토벌하여 공(功)을 세우고 사성(司成)이 되었으며, 예천 군수(醴泉郡守)․청풍 군수(淸風郡守)를 지냈다.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영양(영양)의 창계서원(창계서원)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