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7 13:48
1122 (예종 17) ~ 1189 (명종 19) 자(字)는 덕병(德柄),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병부 상서(兵部尙書) 공유(公裕)의 아들. 음보(蔭補)로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되어 여러번 문과(文科)에 낙방하자 상소, 남삼(藍衫)으로는 3회로 한정된 응시 횟수를 5회로 개정케하고 의종(毅宗) 때 마침내 급제했다. 좌정언(左正言)이 되자 환자(宦者) 백선연(白善淵)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황주 판관(黃州判官)․진주 판관(晋州判官)으로 좌천되었으나 이는 언로(言路)를 막는 일이라는 유사(有司)의 상주(上奏)로 합문지후(閤門祗侯)로 전임, 전중 내급사(殿中內給事)로 승진되었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앞서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직언하여 좌천된 일로 해서 화(禍)를 면했고, 의종 역시 그의 말을 좇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한다. 이해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우승선(右承宣)․어사중승(禦史中丞)이 되어 많은 문신들을 화에서 구해내고 무신들로부터는 고사(故事)의 자문(諮問)을 받았고 용호 대장군(龍虎大將軍)을 겸임, 후에 상장군(上將軍)까지 겸하여 문무 겸직의 시초가 되었다.
대부 소경(大府少卿)․예부 시랑(禮部侍郞)․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태자 소사(太子少師)를 거쳐 1183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판호부사(判戶部事)가 되고, 1187년 권판상서이부사(權判尙書吏部事)에 이르렀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명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