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7 13:46
? ~ 1137 (인종 15) 초명(初名)은 공미(公美), 시호(諡號)는 충의(忠懿), 고려 때 문과(文科)에 급제, 1115년(예종 10) 호부시랑(戶部侍郞)으로 사은(謝恩) 겸 진봉부사(進奉副使)가 되어 송(宋)나라에 다녀왔다.
우부승선(右副承宣)을 거쳐 1117년(예종 12) 전중 소감(殿中少監)․우승선 겸 태자 우찬선(右承宣兼太子右贊善), 1122년 예빈 소경(禮賓少卿)․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거쳐 이해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으나 권신 이자겸(李資謙)의 미움을 받아 충주(忠州)로 유배되었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이 몰락하자 이듬해 이부 상서(吏部尙書)가 되고, 예부 상서(禮部尙書)․지제고(知制誥)․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등을 거쳐 1129년 아부 상서(吏部尙書)․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1131년 검교사도(檢校司徒)․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서경 유수(西京留守)를 역임, 1133년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감수 국사(監修國史)가 되었다.
묘청(妙淸)의 서경 천도설에 찬성하고 그를 성인(聖人)으로 추천했으나 1135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그 토벌을 강력히 주장, 서경인(西京人)들이 벤 묘청의 목을 가지고 항복을 청해 윤 첨(尹 瞻)을 옥에 가둠으로써 서경인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뒤에 묘청을 추천하여 국사(國事)를 그르치게 했던 일로 탄핵받아 수대위(守大尉)․판국자감사(判國子監事)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