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4 14:10
1550 (명종 5) ~ 1608 (선조 41) 자(字)는 선여(善餘), 호(號)는 춘호(春湖), 참봉(參奉) 의(儀)의 아들. 1572년(서조 5)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언(正言) 등 여러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사간(司諫)으로서 초유어사(招諭御史)가 되어 많은 토병(土兵)을 모집하고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올랐다.
1594년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내고, 1597년 정유재란때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듬해 병조 참판(兵曹參判)이 되고, 그동안 동인(東人)에 속해 있다가 동인이 남인(南人), 북인(北人)으로 분열되자 북인에 가담하고 1599년 대사헌(大司憲)에서 한때 파직되었다.
뒤에 다시 등용되어 1602년 이조 판서(吏曹判書)에서 우의정(右議政)에 승진했고,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전양부원군(全陽府院君)에 봉해지고 좌의정(左議政)에서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다.
북인이 대북(大北)․소북(小北)으로 분당될 때 소북파의 영수(領袖)로서 다시 같은 소북인 남이공(南以恭)과 불화하여 자기 동조자들을 이끌고 탁소북(濁小北)으로 분파, 선조 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광해군에 대신하여 세자로 옹립하여 했으나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鄭仁弘)․이이첨(李爾瞻) 등 대북(大北)일파의 탄핵을 받고 경흥(慶興)에 유배, 이어 사사(賜死)되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 1623) 후 관직이 복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