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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고성남씨] 남정철(南廷哲)

작성일 : 2017-08-03 10:38

1840 (헌종 6) 1916  자는 치상(穉祥), 호는 하산(霞山), 현감(縣監) 홍중(弘重)의 아들.유신환(兪莘煥)의 문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음관(蔭官)으로 익위(翊衛)가 되었다가 1882(고종 1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남학 교수(南學敎授)․장령(掌令)을 거쳐 예조․호조․공조 의 참의(參議)를 역임했다.

1884(고증 21) 천진주차 독리통상사무(天津駐箚督理通商事務)가 되고 이해의 갑신정변(甲申政變) 때는 김윤식(金允植)과 함께 청나라 병영(兵營)에서 김옥균(金玉均) 등 개화당(開化黨)의 축출을 위해 출병(出兵)을 요청했다.

갑신정변 실패 후 사대당(事大黨) 내각이 조직될 때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기용, 이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가고, 이어 보정부(保定府)에 있는 대원군(大院君)을 문안했다. 1885년 다시 천진주차 독리통상사무(天津駐箚督理通商事務)로 임지에 갔다가 왕을 계칙(戒勅)하는 이홍장(李鴻章)의 글을 갖고 돌아왔다.

그 후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형조 판서(刑曹判書)․대사헌(大司憲)․예조판서(禮曹判書)․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역임, 1893(고종 30) 독판교섭통상사무(督瓣交涉通商事務)가 되어 일본 변리공사(辨理公使) 오오이시와 방곡령(防穀令) 문제로 인한 배상문제를 협의했고, 한편 오스트리아 전권위원(全權委員) 백커대장과 한오수호통상조약(韓墺修好通商條約)을 체결했다.

1894년 함경북도 관찰사(咸鏡北道觀察使)가 되고 뒤에 내부 대시(內部大臣)에 승진하여 홍문관 학사(弘文館學士)와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겸직했다. 이어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 태의원경(太醫院卿)․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등을 지내고, 1909(융희 3) 기로소(耆老所)에들어갔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男爵)을 받았다. 글씨를 잘 썼으며, 태백산 선사양각 중수 상량문(太白山璿史兩閣重修上樑文)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