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7:11
1760 (영조 36) ~ 1840 (헌종 6) 자는 원평(元平), 호는 사영․금릉(金陵), 시호는 문헌(文獻), 대제학(大提學) 유용(有容)의 아들. 경전(經典)을 널리 연구, 한(漢)․당(唐)․송(宋)의 여러 글을 읽구 구양수(歐陽修)의 글을 숭상했다.
1784년(정조 8) 음보(蔭補)로 세마(洗馬)에 등용, 산청(山淸)․임실(任實)의 현감(縣監)을 지내고 1792년(정조 1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1800년(정조 24) 대사성(大司成)․부제학(副提學), 1807년 동지사(冬至使), 이듬해 이조 판서(吏曹判書), 1811년 원자 좌유선(元子左諭善), 1814년 선혜청 제조(宣惠廳提調), 이어 예조 판서(禮曹判書), 1817년우의정(右議政), 1821년 좌의정(左議政), 1823년 영의정(領議政), 183 3(순조 33)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당시 제일의 문장가로서 시와 글씨에도 뛰어나 많은 금석문(金石文)과 비갈(碑碣)을 썼다. 순조(純祖) 때 전사자(全史字)란 동활자(銅活字)를 만들었다. 순조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