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6:59
1653 (효종 4) ~ 1704 (숙종 30) 자는 백진(伯珍), 호는 기봉(基峰), 판서(判書) 용익(龍翼)의 아들. 1681년(숙종 7) 진사(進士)가 되고 음보(蔭補)로 내시 교관(內侍敎官)․사도시 주부․호조좌랑(戶曹佐郞)을 역임, 포천 현감(抱川縣監)에 올라 1689년(숙종 15)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했 다. 이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파직,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인형왕후(仁顯王后)가 복위되자 기용되어 지평(持平)․수찬(修撰)․교리(敎理)응교(應敎)를 역임, 이어 헌납(獻納)․사간(司諫)을 지내고 이조 정랑(吏曹正郞)․보덕(輔德)을 거쳐 부모의 봉양을 위해 양양현감(襄陽縣監)으로 나갔다.
1700년 동부승지(同副承旨)․공조 참의(工曹參議)․삼척부사(三陟府使)․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지내고, 이듬해 광주 부윤(廣州府尹)이 되어 기사환국이 있던 해에 과거에 응했다는 탄핵을 받고 사직, 후에 대사헌(大司憲)으로 임명되었으나 거절했다. 문장에도 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