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6:02
1540 (중종 35) ~ 1627 (인조 5) 자는 자호(子豪), 호는 성은(城隱), 시호는 충장(忠壯), 나주 목사(羅州牧使) 유(瑜)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부총관(副摠管)․포도대장(捕盜大將), 충청도와 경사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구성 부사(龜城府使), 안주 목사(安州牧使) 등을 역임,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한때 탄핵을 받았으나 장 만(張 晩)의 변호로 무사했다.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만의 휘하에서 관군을 이끌고 용전, 난을 평정하여 연안 부사(延安府使)가 되고 진무 1등공신(振武一等功臣)에 책록, 의춘군(宜春君)에 봉해졌다.
이어 평안도 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로 영변 부사(寧邊府使)를 겸임,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安州)에 나가 후금(後金)의 군사를 맞아 용전하다가 무기가 떨어지고 승산이 없어지자 성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 부원 군(府院君)에 추봉(追封), 안주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