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8-02 15:40
1454 (단종 2) ~ 1492 (성종 23)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 시호는 문정(文貞), 전(恮)의 아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김시습(金時習)․안응세(安應世)와 친교가 있었다. 1478년(성종 9) 앞서 세조의 꿈에 현덕왕후(顯德王后 : 단종모)가 나타나 아들의 살해를 책했다고하여 세조(世租)에 의해 물가에 이장(移葬)된 소릉(昭陵 : 형덕왕후릉)의 복위를 상소했으나 동승지(都承旨)임사홍(任士洪),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의 저지로 상달되지 못하자 이로부터 세상사에 흥미를 잃고 유랑생활로써 생애를 마쳤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었다는 것과 소릉(昭陵) 복위를 상소했다 해서 부관참시(部棺斬屍)되었다. 만년에 저술한「육신전(六臣傳)」은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숙종(肅宗) 때 비로소 간행되었다.
1513년(중종 8) 소릉이 추복(追復)되면서 신원(伸寃)되고, 좌승지(左承旨)에 추증(追贈), 장흥(長興)의 예양서원, 의령(宜寧)의 향사(鄕祠), 고양(高陽)의 문봉서원(文峰書院), 함양(咸陽)의 서산서원(西山書院) 등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