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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김씨] 김육(金 堉)

작성일 : 2017-07-26 16:51

1580 (선조 13) 1658 (효종 9)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초호는 회정당(晦靜堂), 시호는 문정(文貞), 흥우(興宇)의 아들. 1624(인조 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1643(인조 21)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도승지(都承旨)가 되고,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심양(瀋陽)에 볼모로 잡혀 가자 보양관(輔養官)으로 수행, 귀국하여 우부빈객(右副賓客)이 되었다. 1649(인조 27)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이 되고, 이어 사은 겸 동지사(謝恩兼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영중추부사(領中樞院府事)로 전직되어 진향사(進香使)로 또 청나라에 다녀왔다. 실록청 총재관(實錄廳摠裁官)이 되어「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을 맡아보았고, 1654(효종 5)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이듬해 영의정이 되었다. 경제정책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어 공물법(貢物法)을 폐지하고,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서양의 새로운 역법(曆法)「신력효식(新曆曉式)」을 보고 1653년부터 시헌력(時憲曆)이라는 새역법을 시행케 하였으며, 수레를 제작하고, 관개(灌漑)에 수차(水車)의 사용을 주청하였다. 한편 1651년 상평통보(常平通寶)의 주조를 건의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소실된 활자를 새로이 제작, 많은 서적을 간행하게 했다. 그의 경제학은 실학(實學)의 원조(元祖)인 류형원(柳馨遠)에게 큰 영향을 끼쳐 실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