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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송씨] 송익필(宋翼弼)

작성일 : 2017-06-27 14:50

()는 운장(雲長)이고 호()는 구봉(龜峯)이며 중추부(中樞府) 첨지사(僉知事) 송사연(宋祀連)의 셋째아들이다. 어려서 총명(聰明)하여 학문(學問)을 좋아했다. 7살에 산가모옥월참차(山家茅屋月參差)의 시귀(詩句)를 지을 정도(程道)였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사귀고 성리(性理)에 통달(通達)했다. 일찍이 이산해(李山海) 최경창(崔慶昌), 백광홍(白光弘) 최립(崔笠) 이순인(李純仁) 윤탁연(尹卓然) 하응임(河應臨) ()과 함께 8문장(文章)이라 일컬었다. 가계(家系) 문제(問題)로 관계(官界) 진출(進出)을 포기(抛棄)하고 고양(高陽)의 구봉산(龜峯山) ()에서 후진(後進)을 양성(養成)하니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정엽(鄭燁) 서수(徐隋) 정홍명(鄭弘溟) 김반(金盤) () 많은 학자(學者)를 배출(輩出)하였다. 김장생(金長生)은 그 학통(學統)을 이어받아 예학(禮學)의 대가(大家)가 되었다. ()의 부친(父親) 과 안당(安塘)의 사건(事件)으로 안씨(安氏)송사(送辭)가 끝나지 않아 선조(宣祖)의 오단(誤斷)으로 아우 한필(翰弼)과 평안도(平安道) 희천(熙川)으로 귀양을 갔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명문산(明文山)에 가서 난()을 피하고 귀양에 풀려 당진(唐津)으로 갔다. 이이(李珥) 성혼(成渾)과 함께 서한문(書翰文)과 시문(詩文) ()이 수록(收錄)된 구봉집(龜峯集)이 있고 공의 형 송부필(宋富弼)과 아우 송한필(宋翰弼)은 모두 문장(文章)에 능통(能通)했다. 맛형은 율곡(栗谷), 우계(牛溪)의 벗이 되었다. 연산(連山)의 돈암서원(巖書院)과 시양사(始陽祀)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