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3(성종 24)~1534(중종 29) 자(字)는 순지(順之), 호(號)는 기재(幾齋)․사재당(思齋堂), 전적(典籍) 기(璣)의 아들. 남원(南原) 출신.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중부(仲父)인 판서 침(琛)에게 위탁, 1513년(중종 8) 진사(進士)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정자(正字)를 지내고, 1518년 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가 되었으나 모친 부양을 위해 구례 현감(求禮縣監)으로 나갔다. 이듬해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화를 면하고 은퇴했다가 1533년(중종 28) 전적(典籍)으로 기용된 뒤 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에 이르렀다. 남원(南原)의 영천서원(寧川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