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충목왕 3)~1421(세종 3) 자(字)는 손보(孫甫), 시호(諡號)는 양도(良度),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안종원(安宗源)의 아들. 1365년(공민왕 1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372년 산원(散員)을 거쳐 이듬해 낭장(郎將)이 되어 사헌부 규정(司憲府糾正)을 겸임했다. 1376년(우왕 2) 의영고 부사(義盈庫副使)로 문과(文科)에 급제, 전리사(典理司)와 전법사(典法司)의 좌랑(佐郞),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 공양왕 때 밀직사 좌부대언(密直司左副代言)에 이르렀다. 1392년(태조 1) 이성계(李成桂)의 건국을 도와 개국공신(開國功臣) 3등이 되고, 좌대언(左代言)을 거쳐 중추원 도승지(中樞院都承旨)가 되었다가 이듬해에 전라도 관찰출척사(全羅道觀察黜陟使)․대사헌(大司憲)․도평의사사사(都評議使司事)․보문관 학사(寶文館學士)를 역임했다. 1394년(태조 3) 부친상으로 사직, 후에 흥녕군(興寧君)에 봉해지고,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지냈다. 1416년(태종 16)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의 위계(位階)에 올라 집현전 대제학(集賢殿大提學)이 되고,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에 피봉(皮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