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5:57
1661(顯宗2)~1721(景宗1) 자는 하경(廈卿), 호는 수곡(壽谷),세심재(洗心齋), 시호(諡號)는 효간공(孝簡公), 계림군(雞林君) 김균(金稛)의 11세손, 증영의정(贈領議政) 일진(一振)의 2남, 숙종(肅宗)의 계비(繼妃)인 인원왕후(仁元王后)의 아버지로서 박세당(朴世堂)의 문인이다. 1694년 경주김씨(慶州金氏) 계림군파(雞林君派) 시보(始譜)의 서문(序文)을 썼다. 1696년(肅宗22) 생원시에 합격하고 장원서별검(掌苑署別檢)이 되었다. 1704년 순안현감(順安縣監)으로 있을 때 딸이 숙종계비(肅宗繼妃) 인원왕후(仁元王后)가 되자 영돈령부사(領敦寧府使)가 되고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에 봉해졌으며 도총관(都摠管)으로 호위대장(扈衛大將)을 겸임(兼任)하였다. 공은 일찍이 5세에 부친(父親)을 여의고 매일(每日) 성묘배례(省墓拜禮)하고 성년(成年)이 되어 외출했다 귀가(歸家)할 때는 10리(里)밖에서 부친(父親)의 묘소(墓所)가 보이는 곳에서부터는 가마에서 내려 걸었고 부친(父親)이 돌아가신지 26년후인 1691년 나이31세에 부친묘소(父親墓所)에 석물(石物)을 입석(立石)하면서 소들이 석물(石物)을 운반(運搬)하느라 힘이들어 땀을 흘리며 혀를 빼어물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내 어찌 사람을 위해 저렇게 고생하는 소를 잡아 그 고기를 먹겠는가? 하고 평생을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한다. 저서(著書)에 거가기문(居家紀問), 수사차록(隨事箚錄), 산언(散言)이 있고, 문집(文集)에 수곡집(壽谷集)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