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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김견명(金見明)

작성일 : 2017-06-15 11:00

1206(희종2)1289(충열왕15)  () 일연(一然) ()는 무극(無極), 목암(睦庵), 김언필(金彦弼)의 아들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著者). 경북경산(慶北慶山)에서 출생(出生), 1214,(高宗1)9세때 해양(海陽):광주(光州),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학문(學問)을 닦다가 1219(高宗6) 대웅(大雄)스님의 계()를 받고 승려(僧侶)가 되었다. 1227(高宗14) 승과(僧科)에 급제(及第)하였으며 1237(高宗24)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고 1246(高宗33) 선사(禪師), 1259년 대선사(大禪師)가되었으며 1261(元宗2) ()의 부름을 받고 상경(上京), 선월사(禪月寺)의 주지(住持)가 되고 목우화상(牧牛和尙)의 법통(法統)을 계승(繼承)했다. 1268년 임금의 뜻을 받들어 운해사(雲海寺)에서 큰스님 200명을 모아 대장경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열고 그 맹주(盟主)가 되었다. 1277년 운문사(雲門寺) 주지(住持)가 됐는데, 이때부터 본격적(本格的)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 집필(執筆)에 착수(着手)했다. 1283년 국존(國尊):국사(國師)으로 추대(推戴)되어 원경충조(圓經冲照)의 호()를 받고, 이해에 노모(老母)의 봉양(奉養)을 위해 고향(故鄕)에 돌아왔다. 이듬해 조정(朝廷)으로부터 토지(土地) 100(:3만평)을 받아 군위(軍威)에 인각사(麟角寺)를 중건(重建)했고 궁궐(宮闕)에 들어가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열었다. 무신난(武臣亂)이 일어나 최씨(崔氏) 정권이 안정되는 때에 나서 몽고침입(蒙古侵入)의 질곡의 시대에 살다가 그 압제(壓制)를 받던 시기(時期)에 살다가 갔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우리나라의 신화(神話)와 민간설화(民間說話)를 수집(蒐集)하고 특히 희귀(稀貴)한 향가(鄕歌), 불교관계(佛敎關係)를 수록(收錄)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와 함께 우리 고대사(古代史) 연구(硏究)의 자료(資料)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