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06-15 10:54
시호(諡號)는 문열(文烈)이며, 경순대왕(敬順大王)의 넷째아들 대안군은열(大安君殷說)의 9세손(世孫)이다. 고려인종(高麗仁宗)때 문과(文科)에 올라 한림(翰林)울 거쳐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를 지냈고 벼슬은 광록대부평장사(光祿大夫平章事)에 이르렀다. 북방방어(北方防禦)를 튼튼히 한 공로(功勞)로 주국상낙군개국남식읍천호(柱國上洛君開國男食邑千戶)를 하사(下賜)받았다. 금령군(金寧君)에 봉(封)해지고 금녕(金寧)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금녕(金寧)은 김해(金海)의 고호(古號)로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始祖)로하는 김해김씨(金海金氏)와 대보공(大輔公) 알지(閼智)를 시조(始祖)로 하는 금녕김씨(金寧金氏)로 양분(兩分)되었다. 금녕김씨(金寧金氏)의 본관(本貫)도 고려말(高麗末) 지명(地名)이 김해(金海)로 바뀌면서 금녕김씨(金寧金氏)도 김해(金海)로 부르게 되어 한때는 김해김씨(金海金氏)를 선김(先金), 금녕김씨(金寧金氏) 후김(後金)으로 구별(區別)하기도 했다. 조선(朝鮮)에 들어와서 충의공(忠毅公)김문기(金文起)의 이름이 나면서 김문기(金文起)의 후손(後孫)들을 자칭(自稱)하고 나서는 등 종통(宗統)을 어지럽힌다 하여 헌종(憲宗)12년(1846) 격쟁(擊錚)하여 헌종(憲宗)으로부터 후김해김씨(後金海金氏)의 후손(後孫)은 모두다 경주김씨(慶州金氏)로 복관(復貫)하라는 윤허(允許)를 받고 관향(貫鄕)을 경주김씨(慶州金氏)로 하였다. 백촌공(白村公) 정통시비(正統是非)가 있었으나 확정판결(確定判決)을 못 받았다.
왕조실록(王朝實錄)과 안동권씨족보(安東權氏族譜), 영산신씨족보(靈山辛氏族譜)에서 백촌공(白村公)의 정통(正統)은 경주김씨(慶州金氏)로 이미 명기(明記)되어 있어 경주김씨(慶州金氏) 백촌공파(白村公派)가 정통(正統)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