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號)는 돈암(遯菴). 세종(世宗) 때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로 사헌부집의(司憲府執의)가 되었고, 1454년(단종 2) 왜구가 침범했을 때 병마수군첨절제사(兵馬水軍僉節制使)가 천거되어 수천명의 적을 베어 신장(神將)으로 불리웠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 랐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무령(武靈)으로 내려가 두문불출하며 절의(節義)를 지켰고, 당대의 석학(碩學) 김시습(金時習)등과 교우 하며 일생을 마쳤다. 고창(高敞)의 신산사(新山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