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황주황씨시조(黃州黃氏),황응성(黃應星),황주황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6-07 17:55 수정일 : 2019-02-13 14:3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황주황씨(黃州黃氏)의 시조(始祖) 황응성(黃應星)은 조선조(朝鮮朝)에서 부사(府使)를 역임했으며 황주에 토착한 사족(士族)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황주에 세거(世居)하면서 관향(貫鄕)을 황주(黃州)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황주(黃州)는 황해도(黃海道) 중앙 북단에 위치하는 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동홀(冬忽) 또는 동어홀(冬於忽)이었으며 통일신라(統一新羅) 헌덕왕(憲德王) 때 취성군(取城郡)으로 개칭되었고, 고려(高麗) 초에 황주(黃州)라 하였다.

983년(성종 2) 목(牧)을 두었고 그후 절도사(節度使)를 두었으며 천덕군(天德郡)이라 하여 관내도(關內道)에 속하였다. 1012년(현종 3) 안무사(安撫使)를 두었다가 또 목으로 고쳐 서해도(西海道)에 속하였으며 고종(高宗) 때 지고령군(知高寧郡)으로 강등, 후에 다시 황주목(黃州牧)으로 환원되었다.

1269년(원종 10) 원(元)나라의 동령부(東寧府)에 속하였고 1290년 서북면에 이관되었으며 공민왕(恭愍王) 때 다시 서해도에 이관,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에 진(鎭)을 두어 2도호부, 6군, 5현 등을 관할하여 오다가 1895년에 황주군(黃州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인물을 보면 윤후(胤後)가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낭관(郎官)․현감(縣監)을 거쳐 부윤(府尹)에 이르렀으며, 인기(仁紀)가 형조 정랑(刑曹正郞)․상의원 첨정(尙衣院僉正) 등을 역임하고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라 직장(直長)을 역임한 득승(得承), 순운(順運)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황주황씨(黃州黃氏)는 전국에 5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황주황씨조상인물

황응성(黃應星) 조선조(朝鮮朝)에서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황윤후(黃胤後) 1587(선조 20)~1648(인조 26) 자(字)는 희적(希迪), 호(號)는 월저(月渚). 1613년(광해군 5) 생원(生員)․진사(進士) 양시(兩試)에 합격, 1625년(인조 3) 순릉 참봉(順陵參奉)이 되고, 문과(文科)에 급제, 같은해 모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치던 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가동(家僮)과 마을 장정 수십명을 이끌고 참전(參戰)코자 떠났다가 도중에 화의(和議)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1628년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이 되고 낭관(郎官)․현감(縣監) 등을 거쳐, 세자시 강원 문학(世子侍講院文學)이 되고, 1632년 호조정랑(戶曹正郞), 1634년 장령(掌令)에 이르렀다. 1636년 구성 부사(龜城府使)가 되어 부원수(副元帥)의 종사관을 겸임, 이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철옹성(鐵甕城)을 수비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의주 부윤(義州府尹) 등을 지냈다.

황득승(黃得承) 조선조(朝鮮朝)에 직장(直長)을 역임하였다.

황순운(黃順運) 조선(朝鮮)에서 직장(直長)을 역임하였다.

황민후(黃敏厚) 조선 때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황인기(黃仁紀) 1747(영조 23)~1831(순조 31) 초명(初名)은 인기(仁驥), 초자(字)는 전여(展汝), 자(字)는 경수(景修), 호(號)는 일수호(一水戶). 김원행(金元行)의 문인(門人). 1773년 (영조 49)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휘릉 참봉(徽陵參奉)이 되어 문학에 뛰어나고 충효가 겸전하므로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았으며, 은중경(恩重經)과 두율(杜律)을 하사받았다.

종묘서령(宗廟署令)을 오래 지냈으며, 임실 현감(任實縣監)․형조정랑(刑曹正郞)․광주판관(光州判官)․상의원 첨정(尙衣院僉正) 등을 역임하고 강화부 경력(江華府經歷)이 되어 선치(善治)하였으므로부민들이 비를 세워 은혜를 송축하였으며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황입(黃 岦) 조선조(朝鮮朝)에 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