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제안황씨시조(齊安黃氏),황을구(黃乙耈),제안황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6-07 16:31 수정일 : 2019-02-14 14:2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제안황씨(齊安黃氏)는 창원황씨(昌原黃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회산부원군(檜山府院君) 황석기(黃石奇:창원 황씨 일파의 시조)의 증손 황을구(黃乙耈)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시조 을구(乙耈:개명은 괴)는 고려조(高麗朝)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소윤(少尹)과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한 후 나라에 훈공을 세워 제안군(齊安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봉군지명(封君地名)인 제안을 본관으로 삼아 창원 황씨에서 분적 되었다고 한다.

제안(齊安)은 황해도(黃海道) 황주(黃州)의 고려 성종(成宗) 때 별호(別號)이다. 황주(黃州)는 본래 고구려의 동홀(冬忽:혹은 冬於忽)인데 신라(新羅) 헌덕왕(憲德王) 때 취성군(取城郡)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초에 황주(黃州)라 하였으며, 983년(성종 2) 목(牧)을 두었고 그후 절도사(節度使)를 두었으며 천덕군(天德軍)이라 하여 관내도(關內道)에 속하였다. 1012년(현종 3) 안무사(按撫使)를 두었다가 또 목으로 고쳐 서해도(西海道)에 속하였으며 고종(高宗) 때 지고령군(知高寧郡)으로 강등, 후에 다시 황주목(黃州牧)으로 환원되었다. 1269(원종 10) 원(元)나라의 동녕부(東寧府)에 속하고 1290년 서북면에 이관되었으며 공민왕(恭愍王) 때 다시 서해도에 이관, 조선 세조(世祖) 때에 진(鎭)을 두어 2도호부, 6군 5현등을 관할해 오다가 1895년에 황주군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을구(乙耈)의 7세손 대붕(大鵬)이 조선조(朝鮮朝)에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올라 현령(縣令)․군수(郡守)를 지냈고, 후손 대임(大臨)의 아들 응성(應聖)은 조선 중엽에 보령 현감(保寧縣監)을 거쳐 청도 군수(靑道郡守)를 역임하였다.

이렇게 대대로 벼슬길에 올라 가문을 빛낸 제안 황씨는 창원 황씨(昌原黃氏) 시조 황석기(黃石奇) 계통의 제안공파(齊安公派)로 이어져 세계(世系)하고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제안황씨(齊安黃氏)는 전국에 3,0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제안황씨조상인물

황희중(黃羲中) 조선조(朝鮮朝)에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올랐다.

황유선(黃維善) 조선조(朝鮮朝)에 중정대부(中正大夫)에 올라 선공감정(繕工監正)을 지냈고 이어 강원도 병마절도사(江原道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황희(黃 熙) 조선조(朝鮮朝)에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을 지냈다.

황석령(黃碩嶺) 조선조(朝鮮朝)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곽산 군수(郭山郡守)를 지냈다.

황처상(黃處祥) 조선조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황수상(黃受祥) 조선(朝鮮)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황대붕(黃大鵬) 자(字)는 충운(沖雲). 조선조에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고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삼등 현령(三登縣令)을 지냈으며 벽동 군수(碧潼郡守)를 역임하였다.

황미중(黃美中)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내고 만포진 첨사(滿浦鎭僉使)에 이어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에 이르렀다.

황귀중(黃貴中)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황중원(黃仲元) 조선조에 내금위(內禁衛)에 올랐다.

황현손(黃賢孫) 조선조에 영변 교수(寧邊敎授)를 지냈다.

황치손(黃致孫)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역임하였다.

황대임(黃大臨) 자(字)는 여숙(與叔). 조선조(朝鮮朝)에 선무랑으로 교수(敎授)를 지냈다.

황응성(黃應聖) 자(字)는 경우(慶遇), 호(號)는 동고(東皐). 조선조에 보령 현감(保寧縣監)을 거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청도 군수(淸道郡守)를 역임하였다.

황이후 조선조(朝鮮朝)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