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덕산황씨시조(德山黃氏),황언필(黃彦弼),덕산황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6-03 14:05 수정일 : 2019-02-14 14:0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덕산황씨(德山黃氏)의 시조(始祖) 황언필(黃彦弼)은 고려(高麗) 때 도점의정승(都僉議政丞)을 지내고 덕풍(德豊:덕산의 옛 지명) 군(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後孫)들은 본관(本貫)을 덕산(德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장흥고사(長興庫使)를 지낸 황 재(黃 載)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덕산(德山)은 충청남도(忠淸南道) 예산군(禮山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덕풍(德豊)․이산(伊山) 두 현(縣)의 합명인데, 덕풍현(德豊縣)은 백제(百濟)의 금물현(今物縣)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금무(今武)로 개명하고 고려(高麗) 때 덕풍으로 고쳤다.

이산현(伊山縣)은 본래 백제(百濟)의 시산군(尸山郡)인데 경덕왕 때 이산군으로 개명하였으며, 1405년(태종 5) 두 현을 합하여 덕산현을 만들었고, 1847년(헌종 13) 군(郡)으로 승격하였다가 1913년 일제시대에 덕산면이 되어 지금은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덕산면(德山面)으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인물

그 후 재(載)의 아들 길상(吉祥)이 고려 때 문과(文科)에 올라 부정(副正)을 지냈으며, 손자(孫子) 덕경(德卿)은 신호위 보승 낭장(神虎衛保勝郎將)을 역임하여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된 욱(郁)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연산군(燕山君) 때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낸 필(王筆)은 부위(副尉) 귀수(龜壽)의 셋째 아들로 일찍이 김종직(金宗直) 문하(門下)에서 글을 배워 성종(成宗)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후 교리(校理)․사인(舍人)․승지(承旨)를 거쳐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역임하였다.

특히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6년 동안이나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생활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하며, 그의 손자(孫子) 기로(耆老)는 중종(中宗) 때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별좌(別座)를 지냈으며 특히 초서(草書)를 잘 써서 초성(草聖)으로 일컬어졌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덕산황씨(德山黃氏)는 전국에 3,85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덕산황씨조상인물

황길상(黃吉祥) 고려(高麗) 때 부정(副正)을 지냈다.

황덕경(黃德卿) 고려조(高麗朝)에서 낭장(郎將)에 올랐다.

황귀수(黃龜壽) 자(字)는 영지(齡之). 조선 때 부위(副尉)를 지냈다.

황귀연(黃龜淵) 자(字)는 영연(齡延).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 軍)에 이르렀다.

황인(黃 璘) 자(字)는 형중(瀅仲). 1477년(성종 8) 춘장문과(春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후 교리(校理)․목사(牧使) 등을 거쳐 승지(承旨)를 지냈다.

황위(黃 瑋) 자(字)는 헌보(獻甫). 1502년(연산군 8)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후 동래 부사(東萊府使)․현감(縣監)․교리(校理)를 거쳐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황필(黃 王筆) 자(字)는 헌지(獻之), 호(號)는 상정(橡亭). 1492년(성종2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고 1497년(연산군 3) 중시문과(重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후 교리(校理)․사인(舍 人)․승지(承旨)를 거쳐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역임하였다.

황이옥(黃李沃) 자(字)는 옥야(沃若). 조선 때 별제(別提)를 지냈다.

황귀서(黃貴瑞) 자(字)는 헌이(獻而). 조선 때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다.

황종로(黃宗老) 자(字)는 성수(聖叟). 조선조에 훈련원 첨정(訓練院僉正)을 지냈다.

황기로(黃耆老) 자(字)는 태수(鮐叟), 호(號)는 고산(孤山)․매학정(梅鶴亭). 1534년(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하고 벼슬은 별좌(別坐)를 지냈 다. 만년에 낙동강(洛東江)의 서쪽 보천산(寶泉山) 위에 정자를 짓고 고산정(孤山亭) 또는 매학정이라 이름을 지어 필묵(筆墨)과 독서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필법(筆法)이 뛰어났고 특히 초서를 잘 써서필성(筆聖)이라 일컬어 졌으며 충주(忠州)의 승지(承旨) 이 번(李 蕃)의 비문을 썼다. 저서에 「고산집(孤山集)」이 있다.

황사헌(黃師憲) 자(字)는 여수(汝壽), 호(號)는 송은(松隱). 조선 때 효자(孝子)로 칭송을 받았다.

황형(黃 炯) 자(字)는 자회(子晦). 조선조에 첨정(僉正)에 이르렀다.

황도희(黃道熙) 자(字)는 명재(明哉). 조선(朝鮮) 때 첨절제사(僉節制 使)를 지냈다.

황경(黃 炅) 자(字)는 성원(成遠). 조선 때 판관(判官)를 역임하였다.

황진룡(黃震龍) 자(字)는 백견(伯見), 호(號)는 귀산(龜山). 조선(朝鮮)때 학자(學者)로 이름을 날렸다.

황도승(黃道升) 자(字)는 개이(開而). 조선(朝鮮)에서 선전관(宣傳官)을지냈다.

황헌일(黃憲一) 자(字)는 이로(以魯).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황도기(黃道紀) 자(字)는 겸지(兼智), 호(號)는 월봉(月峰). 조선조(朝鮮朝)에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