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부계홍씨(缶溪洪氏),홍좌(洪佐),부림홍씨,부계홍씨인물

작성일 : 2017-06-03 11:41 수정일 : 2018-02-23 10:11

부계홍씨시조 및 본관의 유래

부계(缶溪)는 경상북도(慶尙北道) 군위군(軍威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삼국(三國)시대의 부림현(缶林縣)인데 고려(高麗) 초에 부계로 고치고 1018년(현종 9)에 상주(尙州)에 석하였다가 후에 선주(善州 : 선산)에 이속하고 공양왕(恭讓王) 때 의흥(義興)에 속하였다. 1914년 군위에 병합된 후 지금은 군위군에 속한 부계명(缶溪面)으로 남아있다.

부계홍씨(缶溪洪氏)는 남양홍씨(南陽洪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고려(高麗)의 개국공신(開國功臣) 홍은열(洪殷悅)의 손자(孫子)인 홍난(洪蘭)의 6세손 홍좌(洪佐)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는 고려조(高麗朝)에 직장(直長)․동정(同正)을 지냈으며 후손들이 누대(累代)에 거쳐 토착(土着) 세거(世居) 해온 부계(缶溪)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계대(繼代)하여 오다가 1977년(정사) 대동보(大同譜) 수보시(修譜時)에 부림파(缶林派 : 宰臣公派)로 합보(合譜)한 것으로 전한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조선(朝鮮) 성종(成宗) 때 대제학(大提學)에 오른 귀달(貴達)이 유명했다.

그는 세조(世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으며,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평정하는 데 공(功)을 세워 이조 정랑(吏曹正郞)에 올랐다.

예종(睿宗)이 즉위하자 춘추관(春秋官)의 편수관(編修官)이 되어 「세조실록(世祖實錄)」편찬에 참여하였고 직제학(直提學)․도승지(都承旨) 등을 거쳐 천추사(千秋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서 왕명으로 「오례의주(五禮儀註)」를 개정했다.

그 후 대사성(大司成)․대제학(大提學)․호조 판서(戶曹判書) 등을 역임하고 연산군(燕山君)의 난정(亂政)을 직간(直諫)하다가 좌천되었으며, 자기의 손녀(孫女 : 언국의 딸)를 궁중(宮中)에 들여 보내라는 왕명을 듣지 않아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慶源)으로 유배가던 중 살해되었다,

특히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원만한 인품으로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 4형제 중 차남 언충(彦忠)은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박사(博士) 등을 역임하고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 진안(眞安)에 유배되었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와 직강(直講)에 복직되었으며, 글씨와 문장(文章)에 뛰어나 정순부(鄭淳夫)․이택지(李擇之)․박중열(朴仲說)등과 더불어 당대의 「문장 4걸(文章四傑)」로 일컬어 왔다.

학자(學者) 언국(彦國)은 귀달(貴達)의 셋째 아들로, 문장(文章)과 지조(志操)가 뛰어나서 사림(士林)의 존경을 받았으며 딸의 미모를 탐한 연산군이 그의 딸을 입궁(入宮)시키라고 강요했으나 거절하여 거제(巨濟)로 유배되었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석방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심했다.

그 외 인조(仁祖) 때 우승부지(右副承旨)를 거쳐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호(號)와 사간(司諫)을 지낸 그의 아들 여하(汝河)가 이름났으며, 현감(縣監)을 역임한 언승(彦昇)과 복창(復昌)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계홍씨(缶溪洪氏)는 전국에 15,23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