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곡산한씨시조(谷山韓氏),한예(韓銳),곡산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30 15:05 수정일 : 2019-02-14 13:42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곡산한씨(谷山韓氏)의 시조(始祖)는 고려(高麗)에서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한예(韓銳)인데, 그는 중국(中國) 송(宋)나라 출신으로 206년(고려 희종 2) 8 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들어와 곡산군(谷山君)에 봉해지고 본관(本貫)을 곡산(谷山)으로 하사(下賜)받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곡산(谷山)은 황해도(黃海道) 북동단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십곡성(十谷城)인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진서(鎭瑞)로 고쳐서 영풍군(永豊郡 : 평산)의 영현(領縣)으로 삼았으며 고려(高麗) 초에 곡주(谷州)로 개칭하였다. 조선(朝鮮) 태조조(太祖朝)에 곡산(谷山)으로 고쳐서 부(府)로 승격하였다가 태종(太宗) 때 군으로 격하, 1669년(현종 10) 다시 부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곡산군(谷山郡)이 되어 개성부(開城府)에 속하였다가 1914년 황해도에 속한 군이 되었다. 별칭은 덕둔홀(德둔忽)․고곡(古谷)․진서(進瑞)․상산(象山) 등이다.


대표적인 인물

곡산한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시조 한예의 아들 희(禧)가 고려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으며, 손자(孫子) 익(翊)은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올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아들 진(瑨)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조선(朝鮮) 태조(太祖)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옹(雍)은 예(銳)의 6세손으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능성 군수(綾城郡守) 등을 거쳐 태종(太宗) 때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또한 학자(學者)로 이름난 여유(汝愈)는 일찍이 서경덕(徐景德)․송시열(宋時熱)에게 학문을 배워 상수(象數)․병진(兵陣)․성률(聲律) 등에 능통했고, 치상(致相)의 아들 이원(以原)은 숙종(肅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외직(外職)을 지냈으며 경사(經史)와 시(詩)․역학(易學) 등에 뛰어났다.

그외 부윤(府尹)을 역임한 덕후(德厚)와 학자(學者) 시유(是愈)․문건(文健) 등이 명성을 날림으로서 곡산 한씨(谷山韓氏)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곡산한씨(谷山韓氏)는 전국에 6,26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곡산한씨조상인물

한희(韓 禧) 고려(高麗)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한익(韓 翊) 희(禧)의 아들. 고려에서 판도 판서(版圖判書)를 역임.

한진(韓 瑨) 고려조(高麗朝)에 문과(文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수문전직학사(修文殿直學士)․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지냈다.

한방좌(韓邦佐) 고려(高麗) 때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한방신(韓邦信) 1360년(공민왕 9)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지공거(知貢擧) 등을 지냈다.

한옹(韓 雍) 자(字)는 백희(百熙), 호(號)는 정포(靜浦), 시호(諡號)는 평절(平節). 1392년(태조 1)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능성 군수(綾城郡守)를 거쳐 1400년(정종 2)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1401년(태 종 1) 좌부도위사(左副都衛使)․병조 참판(兵曹參判)․충청도 관찰사 (忠淸道觀察使)․한성부윤(漢城府尹)․경상도도관찰사(慶尙道都觀察使)․개성유후(開城留後)․병조판서(兵曹判書)․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을 역임하고, 1409년(태종 9) 다시 개성유후(開城留後)를 지냈다.

한권(韓 卷) 자(字)는 가서(可舒), 호(號)는 유선(儒仙), 시호(諡號)는 문절(文節), 유후(留後) 옹(雍)의 아들. 1408년(태종 8) 사마시(司馬 試)에 합격, 1410년 승문원(承文院)이 설치되어 경학(經學)에 해박한 사람을 뽑을 때 초대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1414년 우정언(右正言)이 되고, 뒤에 교리(校理)를 거쳐 평안도 안무사(平安道按撫使)를 지냈다.

한언호(韓彦浩) 자(字)는 중온(仲溫). 조선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한언수(韓彦粹) 조선 때 종사랑(從仕郞)에 올랐다.

한신민(韓信民) 조선(朝鮮) 때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한극충(韓克忠) 조선(朝鮮)에서 참봉(參奉)을 역임했다.

한명길(韓命吉) 자(字)는 선초(善初). 조선조에 집의(執義)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