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괴산피씨시조(槐山皮氏),피득창(皮得昌),괴산피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9 14:23 수정일 : 2019-02-14 11:4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괴산피씨(槐山皮氏) 시조는 조선(朝鮮)의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병조 판서(兵曹判書)와 전라 감사(全羅監司) 등을 지낸 시조(始祖) 피득창(皮得昌)이 괴산(槐山)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후손들이 괴산(槐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괴산(槐山)은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시대에는 잉근내군(仍斤內郡)이라 하였으며, 신라시대에는 괴양군(槐壤郡), 고려시대에는 괴주군(槐州郡)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충주(忠州)에 예속시켜 감무관(監務官)을 두어 다스리게 하고, 1403년(태종 3)에 괴주지사(槐州知事)로 고쳤으며, 1413년(태종 13)에 분리하여 괴산군(槐山郡)이라 고쳐 불렀다. 1895년(고종 32)에 충주부(忠州府)에 속했다가 1914년 부․군 폐합시 연풍군(延豊郡)을 병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괴산피씨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득창(得昌)의 아들 강지(康芝)가 장령(掌令)을 지냈으며, 손자(孫子) 정(釘)이 진사(進士)를 증손(曾孫) 소(燒)는 목사(牧使)를 역임하여 판서(判書)에 오른 후손 홍군(洪君), 통덕랑(通德郞) 경송(卿松), 방어사(防禦使) 동현(洞鉉)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그외 통정대부(通政大夫) 종남(宗南)과 판관(判官) 세만(世萬), 통사랑(通仕郞) 세담(世淡)이 유명했으며, 효자(孝子)로 향민의 칭송을 받은 운손(雲孫), 통덕랑(通德郞) 경우(景祐), 참봉(參奉) 봉준(鳳俊) 등이 가문을 빛낸 후손들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괴산피씨(槐山皮氏)는 전국에 2,56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괴산피씨조상인물

피강지(皮康芝) 조선 때 장령(掌令)을 지냈다.

피정(皮 釘) 조선에서 진사(進士)였다.

피소(皮 燒) 조선조에 목사(牧師)를 지냈다.

피정만(皮正滿) 조선조에 영장(營將)을 역임하였다.

피홍군(皮洪君) 조선 때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피경송(皮卿松)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피능화(皮能和) 조선에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피동현(皮洞鉉) 조선조에 방어사(防禦使)를 역임하였다.

피천백(皮川栢) 조선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피선원(皮宣源) 조선조에 목사(牧師)르 역임하였다.

피종남(皮宗南)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피세만(皮世萬) 조선에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피세담(皮世淡) 조선 때 통사랑(通士郞)에 이르렀다.

피운손(皮雲遜) 조선조에 효자(孝子)로 향민의 칭송을 받았다.

피경우(皮景祐)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피봉준(皮鳳俊) 조선조에 참봉(參奉)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