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임구풍씨시조(臨胊馮氏),풍삼사(馮三仕),임구풍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9 14:01 수정일 : 2019-02-14 11:3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풍씨(馮氏)는 중국(中國) 상당(上(黨)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열 다섯째 아들 필고(畢高)의 후손 필만(畢萬)이 진(晋)나라에서 벼슬을 지내고 위(魏)나라에 봉해졌는데, 이때 식읍(食邑)으로 받은 풍성(馮城)을 성(姓)으로 삼았다고 하며,「백가성씨첩(百家姓氏帖)」에는 식읍(食邑)을 풍(馮)에 봉하였는데 자손(子孫)이「우부방변(⻏)」을 떼어 버리고 풍(馮)으로 성(姓)을 삼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 풍씨(馮氏)의 시원(始原)은 중국(中國)의 산동성(山東省) 청주부(淸州府) 임구현(臨胊縣) 부정리(富亭里) 출신인 풍삼사(馮三仕)가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청(淸)나라 심양(瀋陽)에 볼모로 와 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이 1645년(인조 23) 귀국할 때 배종(陪從)하여 내조(來朝)한 9의사(九義士) 중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하여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부터이다. 그후 후손들이 풍삼사(馮三仕)를 시조(始祖)로 하고 본향지(本鄕地)인 임구(臨胊)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임구(臨胊)는 중국(中國) 동부 황해(黃海) 연안에 있는 산동성(山東省)의 현(縣)이다.


대표적인 인물

임구풍씨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始祖) 삼사(三仕)의 증손(曾孫) 경문(慶文)이 조선(朝鮮) 영조(英祖) 대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냈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되었으며, 경운의 아들 재검(載儉)은 선략장군(宣略將軍)․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한 후 가선대부(嘉善大夫)․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어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학조(學祖 : 재검의 아들)는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임구풍씨(臨胊馮氏)는 전국에 4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임구풍씨조상인물

풍익한(馮翊漢) 자(字)는 운거(雲擧), 호(號)는 인재(忍齋). 조선조에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풍경문(馮慶文) 자(字)는 군심(君深), 호(號)는 함인당(含忍堂).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를 지냈다.

풍경우(馮慶瑀) 자(字)는 군서(君瑞). 조선조(朝鮮朝)에 별제(別提)를 역임하였다.

풍재검(馮載儉) 자(字)는 선지(善之), 호(號)는 송암(松庵). 조선조에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풍학조(馮學祖) 자(字)는 백소(伯紹), 호(號)는 동명(東溟). 조선 때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풍원조(馮愿祖) 자(字)는 중정(仲廷), 호(號)는 구화(九華). 조선에서 오 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풍염조(馮念祖) 자(字)는 계성(季聖). 조선조(朝鮮朝)에 부사용(副司勇)을 지냈다.

풍세주(馮世周) 자(字)는 사유(士猷), 호(號)는 돈암(敦庵). 조선 때 오 위장(五衛將)을 지냈다.

풍세호(馮世鎬) 자(字)는 주경(주경), 호(號)는 죽오(竹오). 조선에서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이르렀다.

풍세룡(馮世龍) 자(字)는 윤하(允河).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풍세봉(馮世鳳) 자(字)는 윤상(允祥). 조선(朝鮮)에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했다.

풍석구(馮錫龜) 자(字)는 낙첨(洛瞻). 조선 때 별제(別提)를 지냈다.

풍석기(馮錫驥) 자(字)는 하첨(河瞻), 호(號)는 지암(枳庵). 조선 때 찰 방(察訪)을 지냈다.

풍석붕(馮錫鵬) 자(字)는 치만(致萬). 조선조(朝鮮朝)에 비서승(秘書丞) 을 지냈다.

풍교순(馮敎淳) 자(字)는 성교(聖敎). 조선(朝鮮)에서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풍학순(馮鶴淳) 자(字)는 성선(性善).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