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광산탁씨시조(光山卓氏),탁지엽(卓之葉),광산탁씨조상인물,광주탁씨

작성일 : 2017-05-27 21:21 수정일 : 2018-03-22 12:10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탁씨(卓氏)의 본관(本貫)은「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광산(光山)을 비롯하여 광주(廣州)․남양(南陽)․안산(安山)․양근(楊根)․가평(加平)․용인(龍仁) 등 32본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광산 탁씨(光山卓氏)의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하며 현존(現存)하는 관향(貫鄕)은 광산(光山) 단본(單本)으로 알려져 있다.

광산탁씨(光山卓氏)의 시조(始祖) 탁지엽(卓之葉)은 고려(高麗) 선종(宣宗)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고 뒤에 태사(太師)에 이르러 광산군(光山君)에 봉해졌으며, 문성(文成)이란 시호(諡號)를 제수(除授)받았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광산(光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훌룡한 인물(人物)을 많이 배출시켰다.

광산(光山)은 전라남도(全羅南道)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였던 곳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 무주(武州)로 개칭하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현재의 명칭인 광주(光州)로 개칭하였다. 996년(성종 15)에 강등하여 자사(刺史)를 두고, 후에 다시 해양현(海陽縣)으로 강등하여 현령(縣令)을 두었다. 1259년(고종 46)에 승격하여 지익주사(知翼州事)를 두었다가 후에 다시 승격하여 광주목(光州牧)으로 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501년(연산군 7)에 주(州)가 되고 1895년(고종 32)에 다시 광주군(光州郡)이 되었다가 1935년에 광주군 내의 광주읍(光州邑)이 부(府)로 승격됨에 따라 광주군은 광산군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광산탁씨를 대표하는 인물(人物)로는 시조 지엽(之葉)의 맏아들 도민(道敏)이 선종(宣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으며, 둘째 도집(道集)은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여 크게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편 인종(仁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원광(元光)은 대제학(大提學) 도민(道敏)의 아들로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고 선종(宣宗)의 부마(駙馬)가 되어 광성군(光城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손자(孫子) 종성(宗成)은 신종조(神宗朝)에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고 해양군(海陽君)에 추봉되어, 공민왕(恭愍王) 때 내서사인(內書舍人)을 거쳐 예의 판서(禮儀判書)에 이른 광무(光茂)와 함께 명성을 날렸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태종(太宗) 때 지신사(知申事)․이조 참판(吏曹參判) 등을 지내고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거쳐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에 오른 신(愼)과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른 유진(惟進)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산탁씨(光山卓氏)는 전국에 15,90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광산탁씨조상인물

탁도민(卓道敏) 자(字)는 덕노(德老), 호(號)는 남헌(南軒), 시호(諡號)는 충정(忠靖). 고려 선종(宣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탁도집(卓道集) 자(字)는 덕성(德成), 호(號)는 오헌(梧軒). 고려조(高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

탁원광(卓元光) 자(字)는 관국(觀國), 호(號)는 치재(恥齋), 시호(諡號)는 익성(翼成). 고려 인종(仁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고, 광성군(光城君)에 봉해졌다.

탁원직(卓元直) 자(字)는 여온(汝溫). 고려(高麗) 때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다.

탁원익(卓元翼) 자(字)는 붕거(鵬擧). 고려(高麗)에서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하였다.

탁염정(卓念正) 자(字)는 열보(烈甫). 고려에서 동정(同正)을 지냈다.

탁종성(卓宗成) 자(字)는 해조(海朝), 호(號)는 운암(雲菴). 고려 신종(神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탁계성(卓繼成) 고려조(高麗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탁영(卓英) 자(字)는 중화(中華), 호(號)는 돈재(돈齋), 시호(諡號)는 문민(文愍).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을 역임하였다.

탁정위(卓廷位) 자(字)는 숙현(叔賢).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

탁온(卓溫) 호(號)는 졸암(拙庵). 고려 때 도승지(都承旨)를 지냈다.

탁광무(卓光茂) 자(字)는 겸부(謙夫), 호(號)는 경렴정(景濂亭), 시호(諡號)는 문정(文正). 1331년(충혜왕 1) 문과(文科)에 급제, 1365년(공민왕 14) 내서사인(內書舍人), 이듬해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지내고 예의 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다. 문명(文名)이 높았다. 성주(星州)의 오계사(梧溪祠)에 제향(祭享)되었다.

탁광손(卓光孫) 자(字)는 찬부(纘夫). 고려(高麗)에서 선부 상서(選部尙書)를 지냈다.

탁윤순(卓允順) 자(字)는 경신(景信). 고려 때 판관(判官)을 역임했다.

탁강(卓鋼) 호(號)는 추포(秋圃).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급제 하여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였다.

탁열(卓悅) 자(字)는 학유(學儒). 조선(朝鮮) 때 사헌부 규정(司憲府糾正)을 지냈다.

탁신(卓愼) 자(字)는 자기(子幾)․겸부(謙夫)․계위(係危), 호(號)는 죽정(竹亭),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광무(光茂)의 아들. 1389년(창왕 1) 문과(文科)에 급제했으나 부모가 연로 하므로 고향에서 감지(甘旨)를 지내고 아버지가 병사한 뒤 1398년(정 종 즉위)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용담현령(龍潭縣令)․좌정언(左正言)․장령(掌令) 등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으나 설화(舌禍) 사건으로 나주(羅州)에 장류(杖流)되고, 다시 전농정(典農正)․성균사성(成均司成)․동부대언(同副代言)을 지냈다.

여러 관직을 거쳐 태종(太宗) 때 지신사(知申事)․경승 부윤(敬承府尹)․이조 참판(吏曹參判)․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등을 지내고, 1421년(세종 3)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에 올랐다. 경학(經學)에 밝았고, 무예(武藝)․음률(音律)에도 능했다. 성주(星州)의 오계사(梧溪 祠)에 제향(祭享)되었다.

탁사준(卓思俊) 자(字)는 사호(士豪).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탁윤진(卓潤鎭) 조선(朝鮮) 때 광주 부윤(廣州府尹)을 지냈다.

탁희립(卓希立) 자(字)는 이성(而聖). 조선(朝鮮) 때 남평 현감(南平縣監)을 역임하였다.

탁사립(卓斯立) 자(字)는 이백(而百). 조선조(朝鮮朝)에 영암 군수(靈巖郡守)를 지냈다.

탁중(卓中) 자(字)는 건정(建正), 호(號)는 죽림(竹林),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조선 세조(世祖)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전적(典籍)을 지냈다.

탁본(卓本) 자(字)는 치장(穉張). 조선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탁신정(卓愼禎) 자(字)는 근보(謹甫). 조선 때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탁련(卓璉) 자(字)는 기중(器重), 호(號)는 송헌(松軒). 조선조(朝鮮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를 역임했다.

탁순도(卓順道) 조선(朝鮮) 때 황주 목사(黃州牧使)를 역임했다.

탁광수(卓光守) 자(字)는 자절(子節), 호(號)는 운림(雲林). 조선(朝鮮)에서 예빈시정(禮賓시正)을 지냈다.

탁유항(卓有恒) 자(字)는 구지(久之). 조선(朝鮮) 때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탁연원(卓連源) 조선(朝鮮) 때 원주 판관(原州判官)을 지냈다.

탁거원(卓居元)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탁홍민(卓弘敏) 자(字)는 율보(律甫).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옥강 만호(玉江萬戶)를 지냈다.

탁순창(卓順昌) 자(字)는 덕승(德昇), 호(號)는 송암(松菴). 조선조(朝鮮朝)에 부정(副正)을 지냈다.

탁순맹(卓順孟) 자(字)는 성서(聖瑞). 조선 때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탁자견(卓自堅) 조선 명종(明宗)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탁자준(卓自俊)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탁유진(卓惟進) 자(字)는 퇴지(退之). 조선 선조(宣祖)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탁재윤(卓在潤) 조선(朝鮮) 때 추밀원 의관(樞密院議官)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