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흥해최씨시조(興海崔氏),최호(崔湖),흥해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7 19:46 수정일 : 2018-02-23 11:42

흥해최씨의 연원(興海崔氏의 淵源)

흥해최씨는 고려중업(의종~명종)에 형제 4공(四公)이 국가에 유공하여 각소 봉군하니 백형은 연(洐)이니 월성군 : (지금경주)에 봉해졌고 중형은 한(漢)이니 永川君에 봉해졌으며 공은 셋째이니 곡강부원군에 증봉(增封)되었고 넷째는 익(瀷)이니 好山君 : (順天)에 봉해져서 세상에서 一門이 가려(佳麗)하여 사군풍류(四君風流)라고 일컬었다.

그후 백중계(伯仲季) 삼파는 각처에 흩어져 살아서 그땅의 이름으로 본관을 옮겼고 오직 공께서만이 고을의 옛집에서 천년(千年)을 다하고 고종(考終)하니 흥해 곡강고을의 오산간좌원(鰲山艮坐原)에 장사 지냈으며 곡강(曲江)은 공에게 장구(杖屨)의 향이 되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흥해최씨는 전국에 14,792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흥해최씨조상인물

고려시대 인물(高麗時代 人物)

최호(崔湖) : 흥해최씨시조 곡강부원군은 고려조 의종 명종년 간에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 검교대장군(檢校大 將軍)으로 삼중대광문하시중(三重大匡門下侍中)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곡강부원군을 관조(貫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배위(配位)는 소국부인(小國夫人) 황씨(黃氏)이다.

최영(崔瑛) : 고종원종년간에(1213~1274) 중군도통사(中軍都統使)로 활약하였다. 고종43(1255)년에 대장 군으로 승천성(昇天城)에 침입한 몽고병을 위유(慰諭)하여 물러가게 했으며 원종3년(1262) 상서좌복야(上書 左僕射) 원종4년(1263) 동지추밀원사태자빈객(同知樞密院事太子賓客)이 되었다. 원종9년(1268)에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로서 단련조병도감판사(團練造兵都監判事)를 겸했고 이듬해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창(淐)을 세운 뒤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으며 임연이 주살(誅殺)되고 원종이 복위된 뒤에도 첨지정사(僉知政事)에 올랐었다.

최흘(崔屹) : 병조판서

최도 : 도사(都事)

최용영(崔龍泳) : 밀직사사

최천하(崔天河) : 문하시중

최천장(崔天藏) : 충숙왕 11년(1324) 2월에 밀직사사 최천장을 추성좌명보절공신(推誠佐命保節功臣)으로 포숭(褒崇)되였다.

최천지(崔天沚) : 대동찰방

최만리(崔萬理) : 금자광록대부수태사문하시랑평장사(金紫光祿大夫守太師門下侍郞平章事)

조선시대 인물(朝鮮時代 人物)

최강(崔康): 밀직사사 조선조에 문과하여 지주사(知州事)하여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이르렀고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 문하로 문도공(文度公) 소찬(所欑)행장에 의하면 공은 자질(資質)이 진순(眞醇)하고 기도(氣度)가 관후(寬厚)하며 검공(謙恭)으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염정(恬靜)으로 스스로를 지켜 사물 (事物)과 어긋나지 아니하였다.

최윤관(崔胤寬): 여조에 은자광록대부이부상서 좌복야(銀紫光祿大夫吏部尙書左僕射)

최교원(崔敎元) : 초휘 효원(孝元), 음통훈대부행강동현령

최한(崔僩) : 일명 순(洵) 세종조 음통훈대부행 신령현감 일운강동현령증통정대부

최자(崔滋) : 고려유신(高麗遺臣)으로 이조에 들어와 태조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여러번 불렀으 나 불취(不就)하였으며 동지(同志) 칠십이현(七十二賢)과 더불어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자정(自靖)하였으며 스스로 부르기를 자호(自號) 수은(樹隱)이라 하였다.

최연(崔淵) : 세종~성종조, 세종1년 기해(141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20년 무오(1438)에 문과하여 행 성균관전적(典籍)에 올랐으며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보직(補職)되고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옮겼으며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하였다. 이어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을 거처 다시 병조정랑(兵曹正郞)을 거처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경유(經由) 고령현감으로 나갔다.

외직(外職)은 대구 곤양(昆陽) 흥해의 세 곳 군수(郡守)를 전역(轉歷)하였고 목민관(牧民官)의 치적(治蹟) 을 거두었다. 다시 내직(內職)에 돌아와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거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좌부빈객(左副賓客)을 거처 청환직(淸宦職)으로 시종(始終)한 공을 사림(士林)이 엄선(嚴選) 청백리(淸白吏)에 그 영화로움을 세상에서 칭송하였다. 중종반정(中宗反正)후 정헌대부(正憲大夫) 홍문관대제학에 중직 되었다. 공이 김해에 이거(移居) 강호(江湖) 김선생 숙자(叔滋)와 인근에 사셨으므로 도의(道義)로 상종(相從) 교부(交孚) 우선(友善) 계의(契誼)가 유독(有篤)하였다.

최증(崔澄) : 세종27면 을축(乙丑) 진사로서 병과(兵科)에 합격하여 용양위상호군(龍驤衛上護軍)에 이 르고 병조함의로 병조참판에 승진되어 동지성균관사를 겸직하였고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에 올라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도총부도총관(都摠府都摠管)을 겸직하였다. 특가(特加) 정헌대부(正憲大夫)를 가자(加資)하였다.

최구(崔玖) :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 무인세보에 발문을 남겼다.

최충(崔冲) :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

최자순(崔自淳) : 종사랑통정대부 청도향현에 올라있다.

최효순(崔孝淳) : 字 행원(行源) 號 눌옹(訥翁) 문종원년 신미(1451)에 영상(領相) 황희(黃喜)가 공을 천거(薦擧)하여 춘추관(春秋館) 사관보(史官補)로 이어 홍문관(弘文館) 박사로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으로 올려 장령(掌令)으로 불렀으나 진소(陳疏)하여 고사(固辭) 불취(不就)하였다.

최홍(崔 泓) : 종부시판사(宗簿寺判事)

최윤홍(崔允泓) : 字 중홍(仲洪) 조선조 중종 20년 성균관 을유진사시 급제

최숙하(崔淑河) : 字 청일(淸一) 號 역원(櫟園) 司憲府 持平

최숙진(최숙진) : 字 윤여(潤汝) 행 홍문관교리(弘文館敎理)겸 경연춘추관편수관(經연春秋館編修官)

최팔준(崔八俊) : 병조판서, 사재감직장 구(玖)의 증손으로 후손이 이북(以北) 황해도와 강원도에 분포되어 있다. 묘지(墓地)가 삭령군 마장면 거문동 입석리 경자지원(朔寧郡馬場面巨文洞立石里庚坐之原)이다. 직계후손 12位의 묘위가 차례로 모셔있다.

최경운(崔慶雲) : 무과하여 행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겸 진주영장(晋州營將)

최여림(崔汝霖) : 사헌부감찰

최여실(崔汝實) : 증 통정대부 밀양에서 포항시 양덕동(良德洞) 사량(思良)으로 이거(移居)한 사량종문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최응인(崔應寅) : 병절교위(秉節校尉)

최연(崔演) : 字 계문(契文) 號 이돈재(利遯齋) 성종 2년 신묘(1471)생 중종2년 정묘(1507)에 선음(先蔭)으로 특제(特際) 주부(主簿)

최방우(崔邦宇) : 승의랑(承義郞) 상옹원(司甕院) 참봉 증 보국숭록(輔國崇祿)

최사원(崔泗院) : 字 현우(賢禹) 號 연파(蓮坡) 통덕랑행 예조정랑

최영수(崔永洙) : 문과하여 행 이성(利城) 현감

최지형(崔沚瑩) : 문과하여 성균관전적 증 가선(嘉善) 이조참판

최지위(崔地緯) : 공조좌랑 비안(比安)현감 안동진관병마첨절제도위( 安東鎭管兵馬僉節制都尉)

최계동(崔繼潼) : 字 대방(大防) 세종23년 신유(1441)에 성균진사, 문종원년 신미(1451)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승문원의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에 주서(注書) 박사(博士)를 거처 성균관전적으로 승진하고 직강(直講)을 거쳐 영산(靈山)현감으로 나가니 품계는 통훈, 합천군수, 함흥군수로 나가니 통정대부의 품계를 더하였다. 역임한 세고을의 아전과 백성이 친애하고 울연히 성적(聲績)이 있어 마침내 태상(太常二奉常寺正)에 이르러 예조참의에 증직되었고 점필재(佔畢齋) 김선생 종직(宗直)과 도의교(道義交)를 맺었고 공은 밀양에서 거창가조 남면 평촌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공의 후손을 거창과 밀양 김해로 분포하고 거창종문의 입향조이다. 유재우(有齋宇)하니 오도재(五道齋)이다.

최순동(崔順潼) : 벼슬은 문종1면 임신(1452)에 무과에 올라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참군(訓練院參軍)이다. 공은 세상을 보고 몸을 감추고 오직 봉친(奉親)하는 일에만 즐거워 하였다. 지체(志體)를 효로서 봉양함이 세상에 알려졌었다. 세상의 번등(飜謄)함과 외표(外表)만 힘쓰는 것을 학문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을 듣고 싫어하였다.

최건동(崔健潼) : 號 흥안(興安)이며 문과하여 현신교위(顯信校尉)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사직(副司直) 종지(終至) 전라감사(全羅監司)에 이르다.

최숙량(崔淑粱) : 字 흥원(興源) 호 평촌(坪村) 창신교위공은 한원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선생과 우서(友婿=同壻)로 일두(一蠹) 정여창(정여창)선생과 더불어 거창군 가조면 도리( 居昌郡加祚面道理) 오도산하(吾道山下) 수포대(水瀑臺)에서 도학(道學)을 강마(講磨)했으니 공이 대의 주인(主人)이었다. 후손이 오도재(吾道齋) 경내(境內)에 모현정(慕賢亭)을 창건하여 삼현(三賢)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