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한남최씨시조(漢南崔氏),최홍연(崔洪衍)

작성일 : 2017-05-26 20:57 수정일 : 2018-04-17 14:5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한남최씨(漢南崔氏)는 고려조(高麗朝)에서 합문지후(閤門祗候)를 지낸 최홍연(崔洪衍)을 시조(始祖)로 하며, 그의 후손 계방(繼芳)이 고려조(高麗朝)에 수사공(守司空)․상서 우복야․참지정사(參知政事)․판삼사사(判三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한남(漢南)은 지금의 수원(水原)을 고려 성종(成宗) 때 일컫던 별호(別號)이다. 수원은 경기도 중남부에서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매홀군(買忽郡),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에는 수성군(水城郡)이라 불렀으며 고려(高麗) 때 인주(仁州)․수주(水州)를 거쳐 1301년(충선왕 2) 수원부(水原府)로 개칭되었다.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1895년(고종 32) 한 때 인천부(仁川府) 관할의 수원군으로 되었다가 1949년 수원군을 분할하여 수원시로 승격시키고 수원군은 화성군(華城郡)으로 개칭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중시조 계방의 아들 함(諴 : 자는 자화,시호는 문간)은 예종조(睿宗朝)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1125년(인조 3) 우정언(右正言)․지제고(知制誥)가 되었고, 이듬해 이자겸(李資謙)의 난(亂)이 일어나자 국새(國璽)를 가지고 행재소(行在所)까지 왕(王)을 시종(侍從)하였으며 예부 시랑(禮部侍郞)․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로 만수절사(萬壽節使)가 되어 금(金) 나라에 다녀왔다. 그후 병부상서(兵部尙書)․판삼사사(判三司事)를 거쳐 중서시랑(中書侍郞)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를 지냈으며, 문장(文章)에도 능(能)하였다.

그 후의 세계(世系)에 대하여서는 자료가 부족하여 상고(詳考)할 수 없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남최씨는 전국에 총 22가구, 8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