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직산최씨시조(稷山崔氏),최홍재(崔弘宰),직산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6 10:26 수정일 : 2019-02-13 14:0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직산최씨(稷山崔氏)는 최씨(崔氏)의 득성조(得姓祖)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인 최홍재(崔弘宰)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본래 장군(將軍)의 아들로 태어난 홍재(弘宰)는 기(氣)를 숭상하고 말 달리기를 좋아하며 명장(名將) 윤 관(尹 瓘)을 따라 여지을 정벌하여 공을 세워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역임한 후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되어 포주(抱州)를 수복하였다.

그 후 의주성(義州城)을 쌓는데 공을 세워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형부 상서(形部尙書)․판삼사(判三司)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등을 역임하고, 한 때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다가 판리부사(判吏部事)로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책록되고 수사공 우복야(守司空右僕射)․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직산(稷山)에 토착(土着)하여 세거하면서 본관(本貫)을 직산(稷山)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직산(稷山)은 충청남도(忠淸南道)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위례성(慰禮城)이었는데 고구려(高句麗) 때 사산현(蛇山縣)으로 고쳤고 신라(新羅) 떄는 백성군(白城郡) 영현(領縣)으로 삼았으며 고려초(高麗初)에 직산(稷山)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 천안부(天安府)에 예속시켰다가 후에 다시 설치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경기도(京畿道)로 옮겼으나 중종(中宗) 때 복구여 충청도(忠淸道)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1914년에는 천안군(天安郡)에 병합하여 지금은 천안군(天安郡) 직산면(稷山面)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

직산 최씨(稷山崔氏)의 가문을 빛낸 인물 중 홍재의 아들 서(瑞)는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고, 온(溫)은 의종(毅宗) 초에 판합문사(判閤門事)에 올라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1170년(의종24) 판중근 병마사․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문본(文本)은 음보(蔭補)로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되었고 1275년(충렬왕 1) 승선(承宣)에 승진 후에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러 명망높은 가문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직산최씨(稷山崔氏)는 전국에 1,02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직산최씨조상인물

최서(崔 瑞) : 고려조(高麗朝)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다.

최온(崔 溫) : ?~1170(의종 24) 평장사(平章事) 홍재(弘宰)의 아들. 의종(毅宗) 초에 판합문사(判閤門事)에 올라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1170년(의종 24) 판중군병마사(判中軍兵馬事)․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이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에 이르렀다.

최문본(崔文本) : 1233(고종 20)~1276(충렬왕 2)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온(溫)의 아들. 음보(蔭補)로 산정도감 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되고, 견룡행수(牽龍行首)․친종장군(親從將軍)을 역임, 1271년(원종 12) 관노(官奴)인 숭겸(崇謙)․공덕(功德)이 무리를 모아 다루가치(達魯花赤) 등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원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진도(珍島)로 도망가자 이를 사로잡았다. 1275년(충렬왕 1) 승선(承宣)이 되고 뒤에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