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죽산최씨시조(竹山崔氏),최효운(崔孝雲),죽산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6 10:05 수정일 : 2019-02-14 11:1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죽산최씨(竹山崔氏)는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원손(遠孫)이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本貫)을 죽산(竹山)으로 하여 계대(繼代)를 이어왔으나, 중간계보(中間系譜)가 병화(兵火)로 실전(失傳)되어 소목(昭穆)을 밝힐 수 없으므로 죽산군(竹山郡)의 원손(遠孫)안 일죽공(一竹公) 최효운(崔孝雲)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죽산(竹山)은 경기도(京畿道) 용인군(龍仁郡)과 안성군(安城郡) 일부에 속해있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개차산군(皆次山郡)이었는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개산군(介山郡)으로 고쳤다가 고려(高麗) 초에 죽주(竹州)로 고치고 995년(성종14)에 단련사(團鍊使)를 두어 음평(陰平) 또는 연창(延昌)이라 하였으며 현종(顯宗) 때 광주(光州)로 속하였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죽산(竹山)으로 개칭하여 감무(監務)를 두었고, 1895년(고종32) 군(郡)이 되었다가 1913년 원일면(遠一面)과 근삼면(近三面) 일부는 용인군(龍仁郡)에 합해지고 나머지 지역은 안성군(安城郡)에 합해졌다.

중시조 최효윤(崔孝雲)은 조선조(朝鮮朝)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지내고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지경연사(知經筵事)에 이르렀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일세조 효운(孝雲)의 아들 세형(世亨)이 부총관(副摠管)을 지냈고, 그의 아들 충좌(忠佐)는 조선 세조(世祖)의 맏아들 덕원군(德源君) 서(曙)의 사위가 되었다.

충좌(忠佐)의 아들 영(鴒)은 면천 군수(沔川郡守)를 지냈고, 영의 아들 임(琳)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안방준(安邦俊)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전쟁에 공(功)을 세우고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냈으며, 개천 군수(价川郡守)를 역임한 침(琛)은 형인 임(琳)과 함께 삼정사(三亭祠)에 제향(祭享)되었다.

그 외 많은 후손들이 관직에 등용되어 가문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죽산최씨(竹山崔氏)는 전국에 1,76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죽산최씨조상인물 

최효운(崔孝雲) 일명(一名) 효원(孝元), 호는 일죽(一竹). 일찍이 문과 (文科)에 급제, 여러 내외직을 거쳐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지경연사(知經筵事)를 역임하였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 삼정사(三亭祠)에 제향되었다.

최세형(崔世亨) 호(號)는 국헌(菊軒). 조선(朝鮮) 때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역임하였다.

최충좌(崔忠佐) 호(號)는 난정(蘭亭). 세조대왕(世祖大王)의 왕자(王子)덕원군(德源君) 서(曙)의 사위로서 장성 현감(長城縣監)을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최영(崔 鴒) 호(號)는 설매(雪梅).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평산포 만호(平山포萬戶)를 거쳐 면천 군수(沔川郡守)를 지냈다.

최곤(崔 鵾) 자(字)는 정부(正夫), 호(號) 금호(錦湖). 조선(朝鮮) 때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최임(崔 琳) 일명(一名) 신일(臣一), 자(字)는 여림(汝淋).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안방준(安邦俊)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여산(礪山)에 이르렀을 때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그후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 삼정사(三亭 祠)에 제향되었다.

최침(崔 琛) 호(號)는 신죽(薪竹). 조선(朝鮮) 때 선공감 첨정(善工監僉正)을 거쳐 개천 구수(价川郡守)를 지냈다. 삼정사(參亭祠)에 제향되었다.

최견룡(崔見龍) 조선(朝鮮) 떄 상의원 주부(尙衣院主簿)를 역임하였다.

최천두(崔天斗) 조선 때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최상원(崔尙元) 조선조(朝鮮朝)에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최상만(崔尙萬) 조선 때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최수삼(崔秀三) 조선(朝鮮) 때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