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용강최씨시조(龍崗崔氏),최지무(崔枝茂),용강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5 14:19 수정일 : 2019-02-13 13:4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용강최씨(龍崗崔氏)의 시조(始祖) 최지무(崔枝茂)는 고려(高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상호군(上護軍)을 거쳐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를 역임하면서 공(功)을 세워 용강군(龍崗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손자 최개산(崔開傘)은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감무(監務)를 거쳐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올라 왕(王)에게 직간(直諫)을 하다가 북방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 정착(定着)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청주 최씨(淸州崔氏)에서 분적(分籍)하여 최지무(崔枝茂)를 시조(始祖)로 하고 용강(龍崗)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용강(龍崗)은 평안남도 서남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황룡국(黃龍國)이었으며 후에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황룡성(黃龍城) 또는 군악(軍岳)이라 하고 영(令)을 두었으며, 후에 용강이라고 고쳐 현령(縣令)으로 하였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895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에 군(郡)으로 되고, 1914년에 부군(府郡) 폐합 대에 함종군(咸從郡)의 일부를 통합,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시조(始祖) 최지무(崔枝茂) 이후 개산(開傘)의 아들 경손(景遜)이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그 외 판관(判官) 세량(世良)과 사정(司正)을 역임한 세휘(世輝)는 아버지 경손과 함께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세량의 맏아들 응기(應紀)는 사직(司直)을, 그의 동생 응택(應澤)은 부호군(副護軍)을 각각 역임하였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용강최씨(龍崗崔氏)는 전국에 총 35가구, 10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용강최씨조상인물 

최개산(崔開傘) 조선(朝鮮) 때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최경손(崔景遜)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최세량(崔世良)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최세휘(崔世輝) 조선(朝鮮) 때 사정(司正)을 역임하였다.

최응기(崔應紀) 조선(朝鮮)에서 사직(司直)을 지냈다.

최응택(崔應澤)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