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영흥최씨시조(永興崔氏),최지미(崔之美),영흥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5 13:52 수정일 : 2019-07-16 10:4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흥최씨(永興崔氏)의 시조(始祖) 최지미(崔之美)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인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으로 고려(高麗) 때 벼슬을 지냈고 영흥백(永興伯)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손자 한기(閑奇)가 환조대왕(桓祖大王 :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의 빙부(聘父)가 되어 영흥백(永興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경주 최씨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영흥(永興)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영흥(永興)은 함경남도(咸鏡南道)에 있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장령진(長嶺鎭)인데, 당문(唐文) 또는 박평군(博平郡)이라고도 하였다. 고구려 초기에는 화주(和州)라 하였고, 995년(광종 6)에 처음으로 성보(城堡)를 두었다. 995년(성종 14)에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로 합병․개칭하였다가 1028년(현종 19) 화주방어사(和州防禦使) 본궁(本宮)이 되었다.

고종(高宗) 때 원(元)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설치되고 등주(登州)와 통주(通州)를 합쳤으나 충렬왕(忠烈王) 때 다시 복구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화주목(和州牧)이 되었고, 1369년(공민왕 18)에 화령부(和寧府)로 고쳤다. 조선에 들어와 태조(太祖)는 영흥부(永興府)를 개칭, 진(鎭) 이름을 평주(平州)라 하더니 1403년(태종 3)에 군(郡)이 되었다가, 그 이듬해 부(府)로 승격, 1416년(태종 16)에 화주목(和州牧)으로 개칭, 토관(土官)을 두었고, 세종조(世宗朝)에 와서 진을 두었다.

1470년(성종 원년)에 관찰사영(觀察使營)을 본부(本府)에 옮기고 토관을 두었으며, 1509년(중종 4)에 다시 관찰사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영흥대도호부(永興大都護府)에 승격되어, 1895년 영흥군(永興郡)이 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의 대표적 인물은 지미의 아들 종태(終泰)가 고려 때 좌찬성(左贊成)을 지냈으며 종태의 아들 불타(佛佗)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했다.

한편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근(斤 : 불타의 아들)의 아들 양수(良守)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와 좌찬성(左贊成)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으며, 양수의 아들 문경(文景)은 절제사(節制使)를 역임, 그의 아들 옥(沃)과 사의(思議) 형제는 교수(敎授)와 참봉(參奉)을 지냈다.

그 외 조선(朝鮮)에서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한 응방(鷹坊)이 있으며, 상규(尙奎)는 벼슬이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이르렀고, 경운(景雲)은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흥최씨(永興崔氏)는 전국에 32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영흥최씨조상인물 

최종태(崔終泰) 고려(高麗) 때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였다.

최불타(崔佛佗) 고려(高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최한기(崔閑奇) 시호(諡號)는 정효(靖孝). 조선(朝鮮) 때 영흥백(永興伯)에 봉해졌다.

최근(崔 斤) 조선조에 좌찬성(左贊成)․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최양수(崔良守) 조선조(朝鮮朝) 초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

최문경(崔文景) 조선 때 동북면 절제사(東北面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최옥(崔 沃) 조선(朝鮮)에서 봉직랑(奉直郞)으로 갑산 교수(甲山敎授)를 지냈다.

최사의(崔思義) 조선(朝鮮) 때 동부 참봉(東部參奉)을 역임하였다.

최효련(崔孝連) 조선조에 숙릉 참봉(淑陵參奉)을 역임하였다.

최인하(崔引夏)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士郞)으로 숙릉 참봉(淑陵參奉)을 지냈다.

최보형(崔保衡) 조선(朝鮮) 때 준원전 참봉(濬源殿參奉)을 지냈다.

최기(崔 淇) 조선(朝鮮) 때 보공장군(保功將軍)에 이르렀다.

최억전(崔億全) 조선조(朝鮮朝)에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지냈다.

최준호(崔俊湖) 조선(朝鮮) 때 계용 참봉(鷄用參奉)을 역임하였다.

최응방(崔應芳) 조선(朝鮮) 때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최대성(崔大成) 조선조(朝鮮朝)에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최재철(崔在喆) 조선(朝鮮)에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최명원(崔明遠)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최두각(崔斗恪) 조선 때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최창대(崔昌大) 조선조(朝鮮朝)에 좌윤(左尹)을 역임하였다.

최종추(崔宗秋) 조선(朝鮮)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최용운(崔龍雲) 조선(朝鮮) 때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최상규(崔尙奎) 조선에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최경운(崔景雲) 조선(朝鮮)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최성익(崔成翊) 조선(朝鮮) 때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최석두(崔錫斗)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