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상원최씨시조(祥原崔氏),최응(崔凝),상원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4 17:12 수정일 : 2019-02-13 15:3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상원최씨(祥原崔氏)는 신라(新羅) 대상(大相) 최우달(崔佑達)의 아들인 최응(崔凝)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응(凝)은 태조(太祖)를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벼슬이 내봉경(內奉卿)에 이르렀고, 태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뒤에 대광태자태부(大匡太子太溥)에 추증되었다. 그러나 그 후 보첩(譜牒)이 실전되어 후손 효동(孝動)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조선에서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한 무철(武哲)을 시조(始祖)로 기록하고 있다.

상원(祥原)은 평안남도(平安南道) 중화군(中和郡)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 때는 실달현(息達縣)이었고, 통일신라 때 토산현(土山縣)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에서는 황주(黃州)에 속하였다가 1322년(충숙왕 9) 공신(功臣) 조인규(趙仁規)의 고향이라 해서 상원으로 고쳐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중화군(中和郡)에 병합되어 그 중심지역은 상원면(祥原面)이 되었다.

상원 최씨(祥原崔氏)는 개성 최씨(開城崔氏)에서 분적(分籍)하여 상원(祥原)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대표하는 인물(人物)로 석명(錫明)과 상영(象永)을 들 수 있다. 석명(錫明)은 조선(朝鮮) 후기의 무신(武臣)으로 개성(開城)에 살며 성동(城東)의 호정(虎亭)에서 제자들에게 궁술을 가르쳤다. 특히 그는 활 쏘는 기술이 뛰어나 중국(中國)의 양유기(養由基)에 비유되었으며, 순조(純祖) 때 춘당대(春塘臺) 유엽사(柳葉射)의 어시(御試)에서 활쏘기에 뛰어나 수문장(守門將)에 이르렀다.

상영(象永)은 1854년(철종 5) 교관(敎官)에 보직되어 임기를 마친 후 감찰(監察)에 전임되었고, 그 후 인천항경무관(仁川港警務官)을 지냈다.

조선조(朝鮮朝)에 도정(都正)을 지낸 상옥(象玉),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창우(昌祐)는 도정(都正)을 지낸 상태(象泰)와 함께 상원 최씨(祥原崔氏) 가문을 명문으로 빛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상원최씨는 전국에 총 431가구 1,39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 인물 - 상원최씨조상인물

최윤연(崔潤淵) 조선(朝鮮) 때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이르렀다.

최수해(崔壽海)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최경두(崔擎斗) 자(字)는 자주(子柱). 조선 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최응립(崔膺岦) 조선조(朝鮮朝)에 훈련판관(訓鍊判官)을 역임하였다.

최수화(崔秀華) 자(字)는 자진(子鎭), 호(號)는 취은(醉隱).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최창호(崔昌祜) 자(字)는 대백(大伯). 조선(朝鮮)에서 충청우후(忠淸虞侯)를 지냈다.

최창우(崔昌祐) 자(字)는 운경(雲卿). 조선(朝鮮)에서 오위장(五衛將)를지냈다.

최경필(崔景弼) 자(字)는 성직(聖直), 호(號)는 만취재(萬吹齋). 조선조(朝鮮朝)의 진사(進士)였다.

최자애(崔自崖)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최석곤(崔錫崑) 자(字)는 중숙(重叔).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최석명(崔錫明) 조선 후기의 무인. 개성(開城)에 살면서 사사(射師)가 되어 성동(城東)의 호정(虎亭)에서 제자에게 궁술(弓術)을 가르쳤다. 기술이 뛰어나 중국의 양유기(養由基)에게 비유 되었으며, 순조(純祖)때 춘당대(春塘台) 유엽사(柳葉射)의 어시(御試)에서 활쏘는 수문장(守門將)에 이르렀다.

최상옥(崔象玉) 자(字)는 화서(和瑞). 조선 때 도정(都正)을 역임했다.

최상천(崔象天) 자(字)는 건행(健行). 조선 때 감역(監役)을 지냈다.

최흥운(崔興運) 자(字)는 기보(起甫).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최상태(崔象泰) 자(字)는 광택(光澤). 조선 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최상억(崔象億) 자(字)는 중명(仲命). 1854년(철종 5) 교관(敎官)에 보직되어 임기를 마친후 감찰(監察)에 전임되었고, 그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인천항 경무관(仁川港警務官)에 이르렀다.

최상정(崔象貞) 자(字)는 사곤(士坤), 한말(韓末)에 시종관(侍從官)을 역임했다.

최의남(崔儀南) 자(字)는 내형(迺亨). 한말에 감찰(監察)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