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광주최씨시조(廣州崔氏),최득보(崔得寶),광주최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4 14:33 수정일 : 2019-02-13 15:1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광주최씨(廣州崔氏)는 경주최씨(慶州崔氏)에서 분적(分籍)한 계통(系統)으로 조선(朝鮮)때 장사랑(將仕郞)으로 훈도(訓導)를 역임하고 평안도 안주(平安道安州)에서 정착세거(定着世居)한 최득보(崔得寶)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거의 전세거지(前世居地)인 광주(廣州)를 본관(本貫)으로 삼가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광주(廣州)는 경기도(京畿道) 중앙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마한(馬韓)의 일부로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으로 망명하여 한왕(韓王)이 되어 세운 회안국(淮安國)의 일부였다.

371년 백제(百濟)의 근초고왕(近肖古王)은 남한산(南漢山 :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이도(移都)하여 이 곳을 한성(漢城)이라 불렀고, 553년 (백제 성왕 31, 신라 진흥왕 14) 신라(新羅)에게 나라를 빼앗겨 신라의 한산주(漢山州)가 되었다가 756년(경덕왕 15) 한주(漢州)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광주(廣州)로 고쳤고, 여러 차례 변천을 거듭한 후 1895년 광주군(廣州郡)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득보의 아들 덕강(德江)은 조선조(朝鮮朝)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오르고 참의(參議)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손자 진산(進山)과 인달(仁達)은 각각 참의와 군수를 지냈다.

그 외 진산의 아들 해옥(海玉)이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냈으며 손자 한웅(韓雄)이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주최씨(廣州崔氏)는 전국에 1,56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광주최씨조상인물 

최덕강(崔德江)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오르고,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최진산(崔進山) 자(字) 인통(仁通는). 조선(朝鮮)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선) 겸 동래부사(東萊附使)를 거쳐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최인달(崔仁達) 조선(朝鮮)때 상원군수(祥原郡守)를 지냈다.

최해옥(崔海玉) 조선(朝鮮)에서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냈다.

최한웅(崔漢雄)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최극정(崔克禎) 자(字)는 경의(敬義).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최상춘(崔尙春) 자(字)는 원화(元化). 조선에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을 지냈다.

최항(崔 沆) 자는 통화(統化). 조선 때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최진권(崔鎭權) 조선(朝鮮)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최운학(崔雲學) 조선(朝鮮)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최학만(崔學萬) 조선(朝鮮)에서 효자(孝子)로 이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