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파릉초씨(巴陵楚氏) 초씨는 중국(中國) 강릉(江陵)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작성일 : 2017-05-21 17:47 수정일 : 2019-02-12 13:2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초씨(楚氏)는 중국(中國) 강릉(江陵)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우리 나라 초씨(楚氏)의 연원(淵源)1644(인조 22) ()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 초해창(楚海昌)이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새로 일어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우리 나라에 망명(亡命)하여 충의장군(忠義將軍)으로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지고 성주(星主)에 정착(定着)한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 그후 그의 아들 수명(壽命)이 청()나라가 밀파(密波)한 자객(刺客)을 피하여 명()자가 붙은 고을을 찾아 함북(咸北) 명천(明川)에 은거(隱居)한 후 자손들이 번창하여 초해창(楚海昌)을 시조(始祖)로 하고 선조(先朝)의 옛 고향인 파릉(巴陵)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초씨(楚氏)의 본관(本貫)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등의 문헌(文獻)에 성주(星州)․청주(淸州)․강릉(江陵)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동원분파(同源分派)이며 현존(現存)하는 관향(貫鄕)은 파릉(巴陵) 단본(單本)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릉(巴陵)은 중국(中國) 악양(岳陽)의 옛 지명(地名)으로, 호남성(湖南省) 북동 끝에 있는 악양 지구의 현공서(縣公署) 소재지이다. 동정호(洞庭湖)의 물이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나가는 출구에 위치하여 양자강의 수운(水運)과 경광철도(京廣鐵道) 육운(陸運)이 겹쳐 있어서 호남성의 관문 구실을 한다. 남북조(南北朝) 시대부터 있어온 옛 도시로 악주성(岳州城) 서문(西門)에 있는 악양루(岳陽樓)는 동정호와 양자강을 전망하는 웅대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파릉초씨는 다른 성씨(姓氏)와는 달리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문중으로 초씨(楚氏)의 인물(人物)로는 조선(朝鮮) 순조(純祖)때 효행(孝行)으로 명성을 날려 효자 정문(孝子旌文)이 세워진 중연(重淵)과 용안(龍安) 현감(縣監)을 지낸 각()이 유명했고, 헌종(憲宗)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한 병덕(秉悳)은 정평(定平) 군수(郡守)를 지낸 우섭(禹燮)과 함께 파릉 초씨(巴陵楚氏) 가문을 빛냈다. 이밖에도 효자(孝子)로 칭송을 받았던 원명(原明)과 선()이 유명했으며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갑()이 당대에 뛰어났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파릉초씨(巴陵楚氏)는 남한(南韓)에 총 74가구, 281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2000년 인구조사에서는 전국에 9가구 33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 대 인 물

초중연(楚重燕) : ()는 자웅(子雄), ()는 뇌암(뇌庵). 조선조(朝鮮朝)에 효자(孝子)로서 칭송을 받았다. 통훈대부(通訓大夫)․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추증(追贈)되었다.

초각(楚 珏) : ()는 중온(仲溫).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초징명(楚徵明) : ()는 헌지(獻之). 조선(朝鮮)에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초병덕(楚秉悳) : ()는 여문(汝文). 조선(朝鮮)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초우섭(楚禹燮) : ()는 공하(公夏), ()는 소암(小庵).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초원명(楚原明) : ()는 태초(太初). 조선조(朝鮮朝)에 효자(孝子)로서 칭송을 받았다.

초복명(楚復明) : ()는 현심(見心). 조선(朝鮮)에서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초병식(楚秉植) : ()는 여벽(汝壁). 조선에서 주사(主事)를 지냈다.

초갑(楚 玾) : ()는 계온(季溫).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초선(楚 璿) : ()는 사온(仕溫). 조선(朝鮮) 때 효자(孝子)로서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