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초계주씨시조(草溪周氏),주황(周璜),초계주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20 13:40 수정일 : 2019-09-10 14:21

초계주씨(草溪周氏)의 연원

초계주씨시조(草溪周氏) 始祖) 주황(周璜)은 주(周)나라 왕손(王孫)의 후예(後裔)로서 당조(唐朝)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다가, 907년(신라 효공왕 11) 오계(五季)의 난(亂)을 만나자 동래(東來)하여 교남(嶠南) 초계부(草溪府)에 정착(定着)함으로써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초계(草溪)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 후 황(璜)의 아들 흥인(興寅)이 통일신라(統一新羅)의 효공왕(孝恭王) 때 집사성대사(執事省大舍)에 올랐으며 시중(侍中)을 거쳐 아간(阿干)에 이르러, 고려 목종(穆宗) 때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손자(孫子) 빈(斌)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초계주씨(草溪周氏)는 황(璜)의 6세손 세후(世侯)가 고려 선종(宣宗) 때 임원후(任元厚) 등과 함께 황금탑(黃金塔)과 국청사(國淸寺)를 창건하고 오복상피식(五服相避式)을 개정하는 등 하례식(賀禮式)의 예법도를 개정하는데 중신(重臣)들과 합모(合謨)하여 크게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아들 지(砥)와 부(砆)의 형제(兄弟) 후손(後孫)에서 훌륭한 인물(人物)이 많이 배출되어 가문의 융성을 누렸다.


씨족사 개관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검교장군(檢校將軍) 치(稚)의 아들 원의(原義)가 도적을 토벌하여 왕으로부터 상방검(尙方劍)을 하사(下賜)받았으며, 개국원종익대이등공신(開國原從翊戴二等功臣)으로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올라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졌고, 상창(尙昌)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으며 중종(中宗) 때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진 후손 세흥(世興)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그 외 임진왜란 때 공(功)을 세운 명신(命新)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몽득(夢得)이 뛰어났고, 공주 판관(公州判官)을 역임한 명흠(命欽), 공조참의(工曹參議) 경손(敬孫), 공조참판(工曹參判) 만량(萬良) 등이 가문(家門)을 빛낸 후손들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초계주씨는 전국에 8,713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가문을 빛낸 선조-초계주씨조상인물

주흥인(周興寅) 877년 생으로 헌강왕때 당조(唐朝)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지사사(知司事)로 재직 중 오계지란(五季之亂)을 만나서 907년(신라 효공왕 11) 아버지를 모시고 동국(東國)으로 나와 초계부(草溪府)에 정착하였다. 효공왕(孝恭王) 때 집사성 대사(執事省大舍)를 제수(除授)받았고 후에 시중(侍中), 아간(阿干)에 올랐다.

주빈(周 斌) 자(字)는 문겸(文兼), 고려 목종(穆宗) 때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과 함께 과거법을 개정(改正)하였고, 벼슬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에 이르렀다.

주정신(周正臣) 자(字)는 직재(直哉), 시호(諡號)는 충장(忠章), 고려 정종(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찬성사(贊成事)가 되고, 김경용(金景庸) ․ 임의(任懿) 등과 숙의(熟議)하여 북계(北界)의 영주(寧州) 등 여러주(州)와 동계(東界)의 고주(高州) ․ 화주(和州) 등에 세적(稅籍)을 없앴고, 문종조(文宗朝)에는 적이 왕래를 못하도록 요소요로(要所要路)에 시기적절한 방법으로 동남해안에 성보(城堡)를 설치하여 해적을 방어케 하였다.

주세후(周世侯) 자(字)는 수교(秀喬), 시호(諡號)는 문경(文敬).금자광록대부예부상서(金紫光祿大夫禮部尙書)를 지냈으며, 고려 선종(宣宗) 때 임원후(任元厚) 등과 함께 황금탑(黃金塔)과 국청사(國淸寺)를 창건하였고 의천(義天)과 더불어 종교장총록(宗敎藏總錄)을 편수(編修)하였으나 타버려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설화도 있다. 오복상피식(五服相避式)을 제정(制定) 또는 백관(百官) 하례식(賀禮式)의 예법도 개정하는데 중신(重臣)들과 합모(合謨)하였다.

주지(周 砥) 자(字)는 도동(道東),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고려(高麗) 때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주호(周 鎬) 자(字)는 좌백(佐伯), 고려 인종(仁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정사(政事)에 대한 사서(史書)를 필기(筆記)하였으며, 국학(國學)에도 힘써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주부(周 砆) 어려서부터 두뇌가 영특하며 손재주가 놀랍게도 뛰어나고 신체(身體)도 장대(壯大)하여 예종(睿宗) 때 병기제조(兵器製造) 및 수선(修繕)을 전업으로 하였기에 군기감사(軍器監事)에 제수(除授)되었다.

주목(周 穆) 자(字)는 심원(深遠), 1252년(고종 39)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냈다.

주치(周 稚) 고려 때 검교장군(檢校將軍)을 역임했다.

주염(周 濂) 자(字)는 무숙(茂叔),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1307년(충렬왕 33)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평장사(平章事)가 되고, 성여완(成汝完) ․ 정 보(鄭 譜) ․ 홍언박(洪彦博) 등과 「고종실록(高宗實錄)」을 찬수(撰修)하였으며, 후에 정안군(定安君)에 봉해졌다.

주원의(周原義) 1392년 도적을 토벌한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상방검(尙方劒)을 하사받고, 개국원종(開國原從) ․ 익대 2등 공신(翊戴二等功臣)에 녹훈(錄勳, 예조판서(禮曹判書) ․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졌다

주언방(周彦邦) 자(字)는 국보(國補),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 좌복사(左僕射)에 제수되었으며 1365년(공민왕 14) 태학사(太學士) 겸 전법판사(典法判書)가 되고 후에 정주군(定州君)에 봉해졌다.

주형(周 珩) 자(字)는 공서(公瑞), 호(號)는 성암(省菴). 우왕(禑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지냈으며, 조선(朝鮮)이 개국되자 이태조(李太祖)가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제수하였으나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나가지 않고 광주(廣州)로 낙향하였다.

주중문(周仲文) 초명(初名)은 순의(順誼), 1460년(세조 6) 을과시(乙科試)에 급제. 성균관 학정(成均館學正)으로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지냈다.

주상문(周尙文) 자(字)는 백경(伯卿). 조선(朝鮮) 때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지냈다

주상창(周尙昌) 초명(初名)은 명창(命昌). 조선 성종(成宗) 때 알성시(謁聖試)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로 있으면서 일본 통신사(通信使)의 사목(事目)을 정하고 부녀재가(婦女再嫁)는 금(禁)할 것을 의논(議論)하는 등 기강(紀綱)을 바로 잡는데 힘썼다.

주세흥(周世興) 자(字)는 가기(可起). 중종(中宗) 원년 박원종(朴元宗) 등이 왕을 폐하고 진성대군(晉城大君) 역(懌)을 인립하는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적극 참여(參與)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고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다.

주한(周 漢) 자(字)는 거원(巨原), 호(號)는 안촌(安村). 1531년(중종 26)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고, 1597년(선조 12)에 「초계주씨대종보(草溪周氏 大宗譜)」를 창시수보(創始修譜) 하였다.

주천민(周天民) 자(字)는 선각(先覺). 조선 명종(明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정(訓練院正)에 이르렀다.

주세우(周世祐) 자(字)는 가희(可希). 조선(朝鮮) 때 조산대부(朝散大夫)로 군기사주부(軍器寺主簿)를 지냈다.

주명신(周命新) 자(字)는 덕기(德基). 조선(朝鮮) 때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를 지냈다.

주몽득(周夢得) 자(字)는 경뢰(景賚), 호(號)는 독락옹(獨樂翁). 1607년(선조 40) 사답사(四答使)로 여우길(呂祐吉)과 일본에 건너가 잡혀갔던 포로 천여 명을 데리고 귀국했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반란을 진압했다. 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주경손(周敬孫)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주의손(周義孫) 자(字)는 세걸(世傑). 한성판관(漢城判官)을 지냈다.

주은설(周恩設) 자(字)는 암노(巖老) 무과급제(武科及第) 영원군수(寧遠郡守)

주집(周 潗) 자(字)는 중원(仲源). 인조(仁祖) 때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주도개(周道盖) 자(字)는 수경(守慶), 초휘(初諱) 우경(宇慶)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주윤후(周胤垕) 자(字)는 창무(昌武).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 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주명정(周命晶) 자(字)는 신보(新甫). 조선 인종(仁宗) 때 을과(乙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주만량(周萬良) 자(字)는 재여(才汝). 조선에서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주문엽(周文燁) 자(字)는 화숙(華叔). 1735년(영조11)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부총관(副摠管)을 역임하였다.

주현순(周玄淳) 자(字)는 덕승(德升). 통정대부(通政大夫)에 봉해졌다.

주채흥(周采興) 자(字)는 여선(汝宣). 서당(書堂) 학문(學問) 교도훈육(敎道訓育) 제자(弟子) 배출(輩出)하였다.

주채철(周采徹) 자(字)는 통여(通汝). 성품이 인자(仁慈) 효도(孝道) 극진 침구 능하여 대중에 적덕함

주채원(周采元) 광복회원 애국지사(光復會員 愛國志士)

주재만(周載萬) 화성병원장(和城病院長)

주인응(周仁應) 민선안남면장(民選安南面長)

주해응(周海應) 자(字)는 사중(四重). 종중(宗中) 순방(巡訪) 돈목지의(敦睦之誼) 지방의원급학교후원회장(地方議員及學校後援會長)을 지냈다.

주계응(周季應) 자(字)는 여방(汝邦), 호(號)는 금호(錦湖). 종친회장(宗親會長) 역임, 개량조합장(改良組合長)을 지냈다.

주창환(周昌煥) 수의사(獸醫師)

주재만(周載萬) 육사 8기(陸士 八期), 6.25 참전(參戰) 전사(戰死) 대전현충원 장교묘역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