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평양조씨(平壤趙氏),평양조씨시조,조춘,평양조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15 22:12 수정일 : 2019-09-06 14:02

평양조씨(平壤趙氏)의 연원

10세기경 송태조 조광윤이 나라를 세우고 화려한 송대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나 이웃 금나라로부터 잦은 침공을 받아 남천하는 등 점차 쇠퇴해가는 와중에서 12세기초 그 일족이 되는 조춘이 동쪽에 있는 고려로 내려와 평양부근 식달현(지금의 상원)에 터를 잡아 상원조씨라 하니 이 분이 평양조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곳에서 4세를 이어오다가 현달한 5세 인규대에 와서 충렬왕명으로 상원에서 평양으로 개관되었다.


평양조씨시조 조춘은 상장군으로 수군을 거느리고 송나라를 도와 금나라를 정복하는데 공을 세워 추밀원부사에 봉하여졌다.

그 후 현손인 조인규도 충령왕조에서 문하시중, 태사, 충선왕의 국구로 평양부원군에 봉하여 재상지종의 귀족반열에 올랐다.

조인규가 태어날 때 母夫人이 품안에 해를 품는 꿈을 꾸는 상서로움이 있었다하여 식달현을 상원으로 개칭하고 충숙왕 때에 공신 조인규의 고향이어서 군으로 승격케 하였다. 상원 향교는 조인규의 옛 집터이고 관가 앞 우물은 지금도 조정승댁 우물이라 일컬으며 우물 옆에 비가 있다.


평양조씨조상인물

고려시대(高麗時代) 인물(人物)

조춘(趙 椿) 평양조씨 시조, 12세기경 식달현(지금의 상원군)에서 살다. 고려 상장군(上將軍)으로 南宋나라를 정벌할 때 수군을 이끌고 큰공을 세우다. 고려조에서 추밀원 부사에 이르다.

조득립(趙得立) 건능직, 추봉 상서 우복야

조홍유(趙洪裕) 용호군 산원, 추봉 밀직사사

조형(趙 瑩) 금오위별장 증추밀원부사 이부상서 상장군

조인규(趙仁規) (1237-1308) 고려문신으로 풍의가 아름답고 천성이 영오하였으며 몽고어에 능하여 원에 사신으로 30회를 다녀왔다. 명변으로 서북두변방(동녕부)을 회복한 공이 있어 문하시중(중찬)에 이르고 평양군에 책봉되어 부()를 열고 관속을 두었으며 찬배에 이름을 부르지 않고 칼차고 신신고 궁전에 오르게 하였다. 충선왕의 국구가 되어 평양부원군에 봉하여지고 시호는 정숙공(貞肅公)이다. 청계산 청계사에 趙貞肅公 祠堂記碑가 현존하고 있다.

조서(趙 瑞) 충렬왕조등제 검교찬성사 도원수 평양군 시호는 莊敏公

조연(趙 璉) (1259-1322) 고려후기의 文臣, 충숙왕조에 첨의평리, 첨의찬성사를 지내고 에 있을 때 정동행성의 省事를 임시로 대리하여 5년간 元使를 원만히 다루었으며, ()할 때 나라 백성이 모두 울었다고 전하며 忠肅公이라 시()하였다.

조연수(趙延壽) (1278-1325) 초명은 (), 충렬왕조등제 보문각 대제학 시호는 文克公

의선(義 旋) 고려후기의 고승, 호는 順菴 연성사 주지로 정혜원통지견무애 삼장법사의 법호, 영원사 주지로 복국우세정명보조 玄悟大師 慈恩君에 봉하여졌으며 당대의 명승으로 음풍명월을 즐기어 검소하고 평범하게 살았으며 글씨에 능하였다.

조위(趙 瑋) (1287-1348) 첨의한성사 평양부원군 시호는 莊景公

조굉(趙 宏) 전교부령 지제고

조천사(趙千礻異) 급제 진사, 밀직부사 사

조덕유(趙德裕) (1314-1352) 판도판서 상호군 증문하시중, 평양부원군, 시호는 文靖公

조윤선(趙允瑄) 호는 林亭, 판도판서 삼사사 개성부사

보 해(普 解) 천태교 선과

조충신(趙忠臣) 관군만호 삼사좌윤 평양군

조방우(趙邦佑) 좌산기상시

조문구(趙文句) 상서

조문신(趙文信) 공부전서

조문도(趙文度) 상서

조순(趙 煦) 판전리상서

조인(趙 璘) 적을 물리친 공으로 응양군 상호군이 되고 역신 辛旽의 제거를 꾀하다 그의 義勇을 꺼려 죽음을 당하였으나 공민왕이 이 사실을 뒤에 알고 그의 충성을 기리었다.

조정(趙 靖) 예의총랑

묘혜(妙 慧) 대선(大禪)

조견(趙 狷) (1351-1425) 여말 절신으로 초명은 윤(), 자는 거경(巨卿), 호는 松山, 시호는 平簡公이다. 조선이 개국하자 두류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 자도 從犬으로 고치고 청룡산으로 은거하였다가 다시 양주로 은거하여 여생을 마쳤다. 공의 묘소는 성남에(성남시 향토유적 제3), 사당은 양주의 정절사(旌節祠, 사액서원), 의정부의 송산사(松山祠, 경기도 문화재 제42), 공주의 송산사우(松山祠宇, 공주시 향토유적 제8) 등이 있다.

조호(趙 瑚) (1335-1410) 여말 문신, 호는 檜谷, 보문각 대제학, 金佇옥사에 관련되어 유배되고 조선이 개국하고 예문관 태학사를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전조의 대제학에 대한 일종의 예우이며 회유책으로 여겨짐. 받아들여 졌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고려조에 대한 충절로 인하여 1410330일 옥사하였고, 시체는 거열(車裂)하였다. 그후 1485년에 복권되였다. 享 檜谷壇

조완(趙 琓) 통례문 판관

조사리(趙思理) 통례문 지후

조사겸(趙思謙) 평양백

조사민(趙思敏) 밀직 평양군


조선시대(朝鮮時代) 인물

조준(趙 浚) (1346-1405) 자는 明仲, 호는 松堂, 여말선초 문신 도검찰사로 왜구를 토평하고 대사헌으로 개혁방향을 제시, 전제개혁을 단행하고 전선(銓選)을 주관, 이성계의 우익으로 개국 1등공신에 오르고 平壤府院君에 봉하다. 문하우시중 평양백을 봉하다. 뒤에 좌정승을 제수하고 정사공신 1등에 오르다. 또한 이어서 首相으로 8년동안 강명정대하였다. 그는 국량이 너그럽고 넓으며 풍채가 늠연하였다. 송당집을 남겼고 경제육전을 간행, 시호는 文忠公이다. 配享 太祖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