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보조씨시조(眞寶趙氏),조용(趙庸),진보조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15 21:30 수정일 : 2019-02-12 10:3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진보조씨(眞寶趙氏)의 시조(始祖) 조용(趙庸)은 지린(之遴 : 배천 조씨의 시조)의 11세조이며,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운주(雲柱)의 아들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문장(文章)과 학행(學行)이 탁월(卓越)했으며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삼사 도사(三司都事)․계림부(鷄林府) 판관(判官) 등을 거쳐 예조(禮曹) 총랑(摠郞)에 올랐다. 1392년(태조 1)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면서 벼슬에서 물러나 야주군(夜珠郡)에 은거(隱居)하자 조정(朝廷)에서 그의 절의(節義)를 가상(嘉尙)히 여겨 진보군(眞寶君)에 봉하고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을 증직(贈職)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本貫)을 진보(眞寶)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보(眞寶)는 경상북도(慶尙北道)에 있는 지명으로, 신라 초기에는 칠파화현(漆巴火縣)이라 하다가 경덕왕 때 진보현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진안현(鎭安縣 : 고구려의 助攬縣)과 합쳐 보성부(甫城府 : 載岩城)로 개편하였다. 고려 현종 때 예주(禮州)에 편입시켰는데 왜구로 인해 그 지방을 비워 두었다가 조선 태조 때 현(縣)을 설치하였으며, 세종(世宗) 때 청부(靑鳧)를 합하여 청보군(靑寶郡)이라 하다가 혁파(革罷)하고 진보로 고쳐 현(縣)으로 삼았다. 1474년(성종 5) 청송(靑松)에 편입했다가 1478년(성종 6) 복구하였으며 1895년(공정 32)에 군(郡)이 되었다. 1914년 군을 폐하고 동면과 북면은 영양군(英陽郡)에 병합되고 나머지는 청송군(靑松郡)에 편입되었는데, 그 중심 지역은 진보면으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 용(庸)의 맏아들 담(聃)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현감(縣監)을 지냈고, 둘째 아들 이(耳)는 함경도(咸鏡道) 평사(評事)를 역임한 후 예조(禮曹) 참의(參議)에 증직되었다. 한편 이(耳)의 아들 청(聽)이 함경도(咸鏡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으며, 청의 아들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한 문행(文行)은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낸 동생 무행(武行)과 함께 진보 조씨(眞寶趙氏)를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보조씨(眞寶趙氏)는 남한(南韓)에 6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진보조씨조상인물

조담(趙 聃) :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조이(趙 耳) : 조선(朝鮮) 때 평사(評事)를 지냈다.

조극인(趙克仁) : 조선조(朝鮮朝)에 녹사(錄事)를 역임했다.

조청(趙 聽) : 조선(朝鮮)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조문행(趙文行) : 조선(朝鮮) 때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조무행(趙武行) : 조선(朝鮮) 때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조귀령(趙龜齡) : 조선(朝鮮)에서 선무랑(宣務郞)에 이르렀다.

조선(趙 瑄) : 조선조(朝鮮朝)에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조충준(趙忠俊) : 조선(朝鮮) 때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조충걸(趙忠傑) :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조입(趙 砬) : 조선조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