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직산조씨시조(稷山趙氏),조성(趙成),직산조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5-15 21:28 수정일 : 2018-03-21 12:0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직산조씨(稷山趙氏)는 백제(百濟)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인 조성(趙成)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직산조씨감자대동보(稷山趙氏甲子大同譜)」에 의하면 시조 조 성(趙 成)은 한(漢)나라 성제(成帝 : 제11대 황제, 재위 기간 : 기원전 32~7) 때 주몽(朱蒙 :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를 도와 위례성(慰禮城)에서 백제(百濟)를 건국하고, 한산(漢山)으로 천도(遷都)하여 마한(馬韓)을 멸망시킨 후 백제창업(百濟創業)의 기초를 확립하는데 훈공을 세워 경양군(慶陽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다시 예성부원군(醴城府院君)으로 개봉되었다가 하남백(河南伯)에 이봉(移封)되었다고 하며, 그의 아들 준연(俊連)과 손자(孫子) 입충(立冲)이 함께 금오대장군(金吾大將軍)을 역임한 것으로 전한다.

그 후 시조의 손자(孫子) 입충(立冲)으로부터 고려 말기(高麗末期)에 이르기까지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 되어 후손들은 고려 말에 중정대부(中正大夫)로 합문지후사(閤門祗候使)에 올랐던 원우(元祐)와 병부 낭중(兵部郎中) 원경(元慶),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복원(復元), 태자 첨사(太子詹事) 영원(永元), 조선(朝鮮)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한 응원(應元) 등 다섯 계통(系統)으로 갈라져서 각각 중시조(中始祖)로 받들고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직산(稷山)은 충청남도(忠淸南道)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위례성(慰禮城)이었는데 고구려(高句麗) 때 사산현(蛇山縣)으로 고쳤고, 신라(新羅) 때는 백성군(白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으며 고려 초(高麗初)에 직산(稷山)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 천안부(天安府)에 예속 시켰다가 후에 다시 설치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경기도(京畿道)로 옮겼으나 중종(中宗) 때 복구하여 충청도(忠淸道)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1914년에는 천안군에 병합하여 지금은 천안군에 속한 직산면(稷山面)으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합문지후사 원우(元祐)의 손자 방림(邦霖)이 조선 세조(世祖)가 등극하는데 공을 세워 좌익공신(左翼功臣)에 책록되었고 이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광보(光甫)는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여 부자(父子)가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되었던 경(瓊 : 참판 광보의 현손)의 맏아들 응형(應亨)은 명종(明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철원 부사(鐵原府使)를 역임했으며, 전의 현감(全義縣監)을 지낸 탁(擢 : 사정 광원의 현손)의 아들 서동(瑞東)은 보리공신(輔理功臣)으로 한성부원군(漢城府院君)에 봉해졌다.

한편 임진왜란 때 양산 군수(梁山郡守)로 있었던 영규(英圭)는 양산성(梁山城) 수비에 참전했다가 장렬하게 순절하여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되고 장성(長城)의 모암서원(慕庵書院)과 양산(梁山)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으며, 광해군(光海君)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을 지냈던 영(英)은 숙종조(肅宗朝)에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던 수(洙)와 함께 무맥(武脈)을 이었다.

인조(仁祖) 때의 명신(名臣) 김원행(金元行)의 문인(門人)으로 학행(學行)이 뛰어났던 유선(有善)은 유학(儒學)에 정통하여「고정유사(考亭遺事)」와「사우연원(師友淵源)」을 편찬했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진산 군수(珍山郡守)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그외 숙종(肅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복장(司僕將)을 지내고 영조(英祖)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올랐던 태상(台相)은 군수(郡守)를 역임한 정휴(鼎休)와 함께 직산 조씨를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직산조씨(稷山趙氏)는 남한(南韓)에 4,36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 직산조씨조상인물

조원우(趙元祐) 고려조(高麗朝)에 중정대부(中正大夫)로 합문지후사(閤門祗侯使)를 지냈다.

조언량(趙彦良) 고려(高麗) 때 광정대부(匡靖大夫)로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역임하였다.

조방림(趙邦霖) 조선(朝鮮) 세조조(世祖朝)에 좌익공신(左翼功臣)에 오르고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조광보(趙光甫)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조광원(趙光源) 조선조(朝鮮朝)에 사정(司正)을 지냈다.

조광채(趙光彩)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조완구(趙完球) 조선(朝鮮) 때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조완근(趙完瑾) 조선(朝鮮) 때 개천 지군사(介川知君事)를 지냈다.

조완기(趙完琦) 조선(朝鮮) 때 사직(司直)을 지냈다.

조완옥(趙完玉) 조선조(朝鮮朝)에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조경한(趙景漢) 자(字)는 자청(子淸). 조선(朝鮮) 때 좌승지(左承地)를 역임하였다.

조거초(趙巨初) 조선조에 충좌위 부사정(忠佐衛副司正)을 지냈다.

조거대(趙巨大) 조선(朝鮮) 때 사직(司直)을 지냈다.

조철성(趙哲成) 조선(朝鮮) 때 울산 현감(蔚山縣監)․부사(府事)를 역임하였다.

조윤침(趙允琛) 조선조(朝鮮朝)에 진해 현감(鎭海縣監)을 역임하였다.

조윤관(趙允瓘) 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조경(趙 瓊) 자(字)는 영중(瑩仲)․조선조(朝鮮朝)에 선무랑(宣務郞)에 올랐고,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地)에 추증되었다.

조탁(趙 擢) 조선(朝鮮) 때 전의 현감(全義縣監)을 지냈다.

조벽(趙 璧)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감찰(監察)을 지냈다.

조서영(趙恕永) 조선조(朝鮮朝)에 함경 병마절도사(咸鏡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조응형(趙應亨) 자(字)는 가숙(嘉叔). 1561년(명종 16) 생원시(生員式)에 합격한 뒤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철원 부사(鐵原府使)를 역임하였다.

조서동(趙瑞東) 조선(朝鮮) 때 보리공신(甫理功臣)으로 한성부원군(漢城府院君)으로 봉해졌다.

조봉서(趙鳳瑞) 조선(朝鮮) 때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냈다.

조직(趙 稙) 조선조(朝鮮朝)에 문장(文章)으로서 당세(當世)에 명성(名聲)을 떨쳤다.

조욱(趙 稶) 자(字)는 여실(汝實). 조선(朝鮮) 때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조색(趙 穡) 자(字)는 계실(季實). 조선조(朝鮮朝)에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조적(趙 積) 조선(朝鮮)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地)를 지냈다.

조유(趙 秞) 조선조(朝鮮朝)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다.

조준(趙 俊) 조선(朝鮮) 때 장원서 별제(掌苑署別提)를 역임하였다.

조변(趙 抃) 시호(諡號)는 정익(貞翼). 조선(朝鮮)에서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다.

조소동(趙昭仝)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조순거(趙順琚) 조선(朝鮮) 때 사과(司果)를 지냈다.

조영규(趙英圭) 자(字)는 옥첨(玉瞻). 음보(蔭輔)로 용천 부사(龍川府使)가 되고 임진왜란 때는 양산 군수(梁山郡守)로서 양산성(梁山城)을 수비하다가 전사하였다.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추증, 장성(長城)의 모암서원(慕庵書院), 동래(東萊)의 낙안서원(樂安書院), 양산(梁山)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조진선(趙進善) 조선조(朝鮮朝)에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냈다.

조성달(趙聖達) 자(字)는 비현(丕顯). 1644년(인조 22)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순천 부사(順天府使)를 역임하였다.

조준달(趙儁達) 조선(朝鮮) 때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조현달(趙顯達) 조선조(朝鮮朝)에 상의원정(尙衣院正)․지제교(知製校)를 역임하였다.

조인달(趙仁達) 조선(朝鮮)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조영달(趙潁達) 자(字)는 중오(仲悟).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내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조희관(趙希琯) 조선조(朝鮮曹)에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조영(趙 英) 자(字)는 군보(君輔). 1616년(광해군 8)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을 역임하였다.

조수(趙 洙) 자(字)는 도원(道源). 1676년(숙종 2)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조원(趙 瑗)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통덕랑(通德郞)으로 주부(主簿)를 지냈고,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다.

조태상(趙台相) 자(字)는 여삼(汝三). 조선 숙종(肅宗)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겸 사복장(司僕將)을 지냈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左)의 난을 토평(討平)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올랐다.

조원경(趙元慶) 조선(朝鮮) 때 병조 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조안(趙 安) 조선조(朝鮮朝)에 진사(進士)를 지냈다.

조세간(趙世幹)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조세걸(趙世傑) 자(字)는 부곡(釜谷).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조진(趙 進) 조선(朝鮮) 때 진사(進士)를 지냈다.

조경온(趙絅溫) 호(號)는 지산(芝山).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조정휴(趙鼎休)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조태휴(趙泰休) 조선조(朝鮮朝)에 주부(主簿)를 지냈다.

조희석(趙熙奭) 조선(朝鮮)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